본문/내용
공상적 사회주의에 대한 연구
1. 들어가며
공상적 사회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세 명의 사상가는 푸리에, 오우엔, 그리고 생 시몽이다. 세 사람의 중요한 공상적 社會主義者들(Utopian Socialists)-푸리에, 오우엔, 생 시몽-은 일련의 기본적인 방식에 있어서는 서로 달랐으나, 그들을 일괄하여 검토하는 것을 정당화해줄 만큼의 충분한 공통점이 그들에게 있었다. 그들은 대개 비슷한 시기에 생존했는데, 최연장자였던 상 시몽과 최연소자였던 푸리에 사이에는 단지 12년의 차이밖에 없었다. 모두 1770년과 1825년 사이에 살았던 그들은 주저들을 1800-1825년간에 집필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정중하게 ‘공상적’(Utopian)이란 용어로 불려졌으나 그들은 모어卿的 의미의 공상적인 사람들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理想이 가까운 장래에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공상적이라는 명칭은 다음 세대들에 의해서도 수용되어졌는데, 그것은 공상적 社會主義者들이 여러 사회문제에 ‘과학적’ 대답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주장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단순하게 동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사상적 형태가 종교적 분파주의자, 최근의 改宗者, 환상주의자 및 로망주의자들과 유사했기 때문이었다.
공상적 社會主義者들을 어떤 엄밀한 연대순서가 아니라 그들이 산업사회의 도전에 대처한 방법에 따라 검토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배열할 경우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 1772-1837)가 공상적 社會主義者들 중에서도 가장 공상적인 인물로 등장할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비록 英國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고 있었지만, 자유방임주의적 자유주의와 공장제의 신랄한 비판으로서 그는 산업화를 반대했다. 더우기 그의 綱領은 오우엔이나 상 시몽에 비교할 때 확고한 현실감이 결여된 환상적인 것으로 보여진다.
2. 푸리에
사실 푸리에의 저작에는 흔히 …
루소와 대부분의 과격한 좌파사상가들과 같이 푸리에는 英國적인 모든 것, 英國의 급성장하는 산업사회는 물론 그것을 대변하고 합리화한 이론가들을 혐오했다. 그는 특히 합리적 타산적인 원자화된 개인들에 대한 공리주의적 비젼을 멸시했다. 그는 理想의 진정한 실현은 정서적으로 굳게 결속된 사회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자연적 욕망의 대부분을 억제하도록 한 벤덤의 제도는 잘못되고 실현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인간성은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므로 조직된 사회는 그 인간성을 존중해야 할 것이지 그것을 억제해서는 안된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는 강압적인 ‘일반의지’를 통해 성취되는 쟈코뱅파개념의 사회적결속도 수용할 수 없었다. 그는 <공포정치> 기간동안 박해를 받았고 기요틴의 처형을 겨우 면할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쟈코뱅당의 ‘도덕공화국’(Jacobin Republic of Virtue)에 줄곧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푸리에는 부유한 직물상 가문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생애를 상업에 종사하였지만 어린시절부터 그는 상업을 싫어하면서 “장사꾼의 속임수활동을 하여야하고 천업에 종사하여 스스로를 야만화하는”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한탄했다(Riasanovsky, p. 3). 그는 어린시절을 리용에서 보냈는데 거기서 리용의 견직공들, 곧 까뉘(canut)들이 자위조직을 결성하려는 노력을 직접 목격할 기회를 가졌다. 그는 또한 강력한 지역적 전통을 가진 유토피아사상과도 접하게 되었다. 그는 거기서 또한 깊은 혐오감으로 과도한 상업적 투기, 週期的 인플레이션, 그리고 자유시장 경제가 <執政정부>아래서 재확립될 때 현저해진 산업不況등을 목격했다.
생산적 노동을 향상시키고 고전시대로부터 귀족들에 의해 오래동안 훼손되어온 생산노동을 구출하려한 계몽사상가들의 일반적 관심을 푸리에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한편 푸리에는 합리적 재조직이나 능률성에는 관심을 가졌지만, 노동은 어쩔수 없이 힘드는 것이라고 하는 부르즈와적 노동윤리나 유대-기독교적 관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