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화이트칼라 노동조합 운동의 발전사
1. 발전사 개요
한국사회에서 화이트칼라 노동조합 운동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의 교원노조 결성의 움직임으로부터 비롯되며, 70년대 금융기관 노조 등 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화이트칼라 노동조합이 본격적인 결성되고 활동하게 된 것은 1987년 6월항쟁 이후부터이다. 이는 한국의 화이트칼라 노동운동이 서구와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다. 서구의 경우 블루칼라 노조가 등장하여 약 1세기가 지난 후의 시점에서 화이트칼라 노조가 등장하는 반면 한국사회의 경우 블루칼라 노조와 화이트칼라 노조가 거의 같은 시기에 등장하게 된다. 이는 6월항쟁이 가져온 하나의 효과이기도 한데, 서구의 화이트칼라 노조운동과 한국의 화이트칼라 노조운동의 차이는 노조 지도자들의 사회적 특성으로부터 많은 부분 기인하는 것이다. 즉 대부분의 화이트칼라 노조 지도자들은 대학졸업의 학력을 가진 화이트칼라 임금노동자들로서 대부분이 학생운동에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참여한 경험으로 가지고 있다. 학생운동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넥타이 부대’라는 이름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서 화이트칼라 노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노조결성을 실행하게 되었다(신광영, 1994 : 180). 이렇게 6월 항쟁 직후부터 병원노련, 사무노련 등 현재 존재하는 대부분의 노동조합 및 그 연합체들이 형성되기 시작함으로써 화이트칼라 또한 임금노동자로서의 지위에 대한 자각이 새롭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화이트칼라 노조운동은 블루칼라 노조운동과는 상대적으로 대비되는 양상을 많이 보여왔는데, 화이트칼라 노조와 블루칼라 노조 간의 괴리는 90년대 이후로 상대적으로 정치적 이슈가 점차 사라짐으로써 서로 경제적 이해를 달리하는 이들간의 연대…
2. 민주노총과 화이트칼라
97년 총파업에서 화이트칼라 동원은 전 기간 동안 꾸준하게
결성된 것이다. 이것은 이전까지 전노협과 업종회의, (대기업)연대회의라는 조직적 분산을 극복하고자 한 증거라고 평가되며, 공대위의 틀이 바로 민주노총 건설까지 이르게 되는 기본틀이 되었다.
다시말해, 1990년 전노협이 건설되고 1991년에 전노협과 업종회의, 대기업연대회의가 함께 공대위를 구성함으로써 민주노조진영의 단일 조직 건설의 시초가 다져졌으며, 1993년에 전노대가 건설됨으로써 1994년 민주노총이라는 확고한 노동운동의 조직적 체계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민주노조진영은 소규모 제조업 중심의 전노협, 비제조업 중심의 업종회의, 대기업 중심의 대노협 등 세 조직으로 나위어 있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화이트칼라 노조는 대체로 업종회의에 소속되어 있었다. 민주노총이 건설되기까지 민주노조진영은 단일 조직 건설을 위한 수많은 논쟁을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단일대오형성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중재자적 입장에서 조직의 틀을 유지해온 부분이 바로 업종회의였다. 결국 민주노총 건설의 핵심 주도세력이었던 업종회의의 구성원들이 비제조업 분야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었다는 점에서 민주노총의 화이트칼라에 대한 통제가 상대적으로 수월했을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화이트칼라 노동자조합은 1996년 11월 현재 전체 노동조합의 30% 가량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조직율은 전체 노조조직율(12%)에 못미치는 약 5%이다(이원보, 1997 : 56). 노조수로 보면 화이트칼라 노조는 한구노총과 민주노총을 합쳐서 전체 약 730여 개의 단위노조를 포괄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약 504개의 노조가 민주노총 소속이다. 즉 화이트칼라 노동자 절반 이상이 민주노총 소속인 셈이다.
그리고 97년 총파업에서 한국노총 산하의 금융노련의 경우 민주노총 진영과 연대를 강화하면서 총파업 이후에는 44개 노조 12,750명이 한국노총을 탈퇴해 민주노총에 가입함으로써 민주노총은 화이트칼라 노동조합의 최대의 상급조직이 되었다.
97년 총파업에서 화이트칼라 동원은 전 기간 동안 꾸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