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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조선문학건설본부와 조선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의 대립
1. 조선문학건설본부의 인민문학론
해방직후, 문학권 내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이른바 광범위한 진보적 문학가들의 결집체인 조선문학건설본부의 결성과 그 내부에서의 카프 맹원들이 이데올로기의 비타협성을 내걸면서 결성한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의 결성이다. 1935년 카프가 해산되고 근 10년만에 새로운 조직체로서 등장한 양 단체는, 결국 그 10년의 세월의 경과와 유기적 관련을 맺을 수 밖에 없지만 어쨌든 명확한 입장의 차이를 내걸고 해방직후 초기의 문학운동을 양분하고 있다.
물론 양 단체의 활동은 이후 ‘자연발생적인 문화운동의 필연적인 소산’ 혹은 ‘문화운동의 자발적인 자주적인 전개’로 평가되지만, 이후 전개과정에 있어서 상호 명백히 대립적인 측면을 보인다. 그 대립은 크게 보아 문학이념 및 이를 구현하는 문학운동론, 문학조직론에서 빚어진다.
문학이념에 있어 조선문학건설본부는 먼저 ‘인민문학’을 내세운다. 임화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인민문학론’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인민이 주체가 되는 인민의 문학의 수립”이다. 임화는 「현하의 정세와 문화운동의 당면임무에서 단순히 해방후의 새로운 이념으로서 인민문학을 말하기 보다는 과거 신문학사 전반과 관련시켜 문학의 문제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그의 입장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당대의 성격 규정과 이로부터 도출되는 혁명단계의 문학적 반영을 그 이론적 틀로 삼고 있다. 그는 일제의 패망에도 불구하고 코민테른이 제 6회 대회 강령에서 제시한 “민족의 완전한 해방과 토지관계에 있어 봉건적 잔재의 소탕”이라는 식민지시대의 기본과제가 그대로 존속한다고 지적한다. …
2.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의 프로문학론
앞에서 살펴본 조선문학건설본부의 입장에 비해,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은
위한 일반사업에 참가함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는 여기서 ‘인민’을 국민, 민족, 민중이란 말과 대비해서 “노동자·농민·기타 중간층이나 지식계급층 등을 포섭하는 의미에 있어 이 말 가운데는 피착위의 사회계급을 토대로 한다는 일층 농후한 사회계급적인 요소가 더 많은 개념”이라고 규정하면서, ‘민중’이란 말 대신에 ‘인민’이란 말을 쓰는 것은 아마 현대에 있어서 사회적 모순의 햬결이 국가적·민족적인 여러가지 문제보다도 기본적인 과제로 되어있기 때문이라고 부연한다. 다시 말해 임화는, 수행을 위해 사회적 모순의 해결, 즉 부르조아민주주의 혁명의 수행을 위해 통일전선상의 개념으로 인민을 상정하고, 여기에 목적과 기초를 둔 문학의 수립을 당면과제로 설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상 임화와 김남천의 이러한 논지는 조선문학건설본부의 논자들이 공통적인 입장으로 어느 정도 견지되지만, 조선 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과의 대립시기에 있어 조선문학건설본부는 인민문학론을 완벽한 지도노선의 형태로 내세우지 못했다. 이른바 조선문학건설본부의 조직방침인 「문화활동의 기본적 일방방책에 관하여」에서도 1)일제 문화잔재 소탕, 이에 침윤된 문화반동에 대한 가차없는 투쟁, 2)문화의 인민적 기초완성을 위한 봉건잔재·특권계급적·문화잔재·반민주주의적 지방주의적 문화잔재 청산 3)세계문화의 일환으로서 민족문화 건설 4)문화통일전선 구축 등으로 제기되는데, 분명하게 인민문학론으로 통괄·정초되지 못하고 몇몇 계기를 중심으로 나열적으로 정리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조선문학건설운동본부의 입장은, 제 계층을 포괄하는 통일전선을 펼치며, 동시에 단순한 노동자계급 이기주의를 극복하겠다는 관념으로서의 인민문학론에 놓인다. 따라서 인민 내에서의 노동자계급의 영도성 문제를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노동계급문학의 독자성을 부정하는 내적모순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본질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다.
2.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의 프로문학론
앞에서 살펴본 조선문학건설본부의 입장에 비해,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