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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춤의 기원과 역사
1. 탈춤의 기원
탈춤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탈춤의 기원은 "풍물굿의 잡색 놀이가 발전하여 극적 구조를 갖추면서 탈춤의 틀을 이루었다"고 하기도 하는데, 또 다른 주장은 "무당이 하는 굿에서 액을 떼기 위해서 꾸미는 무당의 1인극 혹은 무당과 잽이와의 2인극(대개는 귀신과 인간의 역할 을 맡아서 간단한 탈을 쓰거나 복색을 갖추어 귀신의 흉내를 내어 직접 액을 빈다.)이 발전하여 탈춤을 이룬 것이다"라고도 한다. 두 주장이 탈춤의 기원에 대해서는 엇갈린 주장이지만 다 액을 막고 복을 빈다는 의미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선자들의 탈춤의 기원에 대한 연구는 좀더 구체적으로 천체 기원설, 처용가무설, 기악설, 풍물굿에 등장하는 잡색놀이설, 산대도감설등이 있는데 그 중 천체 기원설이 가장 타당하다고 추정된다.
(1) 천체 기원설
인간이 지구상에 생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탈은 등장하기 시작한다. 삼라만상 나름으로 각각의 신의 지배를 받는다고 믿었던 정령신앙을 바탕으로 신을 위하며 달래어 인간에게 복을바라고 신을 물리치기 위한 주술적 방법으로 탈이 등장하였고 여기에 춤이 보태어져 주술적의미를 더하였다.
우리나라에 탈이 처음으로 보여지는 것은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개껍질에 두 눈과입을 뚫은 이 탈은 사용방법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주술의 의미로 쓰여진 듯 하다.
(2) 처용가무설
처용가무설은 신라 헌강왕때의 처용무에서 비롯되었으나 삼국사기, 삼국유사등의 사료들을 살펴보면 그 이전에도 탈춤은 있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기악설
백제사람 미마지가 중국에서 가져와 일본에 전했다는 기악과 우리의 봉산탈춤이 유사하는 점을 들어 이야기하는 기악설은 묵극인 기악에서 대사가 있는 연극으…
(4) 풍물굿의 잡색놀이설
(5) 상대도감설
2. 탈춤의 역사
을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60년대의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통 문화에 대한 민족주의적인 자성과 함께 탈춤도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탈춤이 부활하는데는 관주도로 1961년부터 행해진 <민속 경연대회>나 1962년의<문화재보호법>제정 공포와 그에 따른 1964년 <양주 별산대 놀이>무형문화재 1호 지정 등의 정책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탈춤의 전통을 오늘에 맞게 재창조한 것이 아니라 박제화 된 구경거리로 만든 측면이 더 많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탈춤의 부활이라는 면에서는 무엇보다도 대학의 탈춤반, 민속극 연구회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볼 수 있다.
외국 문물에 밀려 우리 문화에 대한 주체적 자세를 가다듬지 못하고 있을 때 잊혀져 가는 우리의 전통 문화를 대학인들이 찾아 나섰고 대학인들의 탈춤에 대한 관심은 일반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70년대이래 부활되어 연희된 전통 탈춤은 누구에게나 감동적 충격이었다. 원형의 놀이판에서 탈꾼의 판과 구경꾼의 판이 구분되지 않고 탈꾼의 물음에 구경꾼이 직접 대답하고 판에 뛰어들어 함께 춤추고 노래할 수 있으며 놀이판의 마지막 뒷풀이에서는 탈꾼과 구경꾼이 한 덩어리가 되어 서로를 확인하는 것이나, 탈춤에 춤, 노래, 재담, 연기, 탈이 구성되어져 각각이 극적 효과를 갖는다는 것, 이외에도 탈춤의 가지가지가 우리 전통 문화의 신명, 넉넉함을 가르쳐 주고, 마음놓고 뛰어들어가 즐길 수 있는 것이라는 등, 진정한 우리 문화를 기쁨과 그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한 것이었다. 문화의 소비자로서 문화의 객체로서만 존재하던 민중들이 스스로 문화의 생산자이며 문화의 주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이러한 깨달음은 탈춤의 종합적 특성과 더불어 다른 문화 양식에도 새로운 충격을 주었는데 실제 70년 대 말부터 탈춤은 여러 예술 장르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기존 서양 무대극이 주류를 이루던 연극 쪽에서는 무대에서의 시간, 공간 개념을 깨뜨리고 관객과의 교감이나 무대장치에 새바람을 일으켜 `마당극` 이라는 새로운 극양식을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