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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민테른의 역사적 의미와 흐름
1.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코민테른
맑스주의에 입각한 노동자계급의 혁명투쟁은 자본가의 착취와 지배의 국제성으로부터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필연성을 역사 전면에 제기하며 전개되어왔다. 일국에서의 혁명의 진행과 노동자계급투쟁을 전세계 노동자계급과의 연관하에서 그 정당한 의미를 부여받게 되고, 따라서 각국의 혁명경험이란 일국적인 것만이 아닌 국제적 노동자계급투쟁의 총괄에 다름아닌 것이다.
1917년 러시아혁명은 맑스주의 이래의 프롤레타리아 혁명투쟁과 국제 프롤레타리아 운동 발전의 이론적, 실천적 성과물이었다. 이후 공산주의 운동은 각국의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과 러시아 혁명의 전통을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통일적으로 담보, 실천하기 위한 국제조직의 건설 속에서 자기전망을 갖게 되었다.
1919년 창립된 코민테른(Communist Internation 또는 The Third International)은 계급해방의 국제적 성격과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올바른 계승이란 의미에서 이후 각국의 공산주의 운동과 혁명투쟁의 경험을 국제적으로 총괄, 발전시킨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국제조직’이었다. 따라서 코민테른의 역사와 운동이야말로 국제공산주의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자, 국제 공산주의의 현주소를 이해하는 첩경이라 할 것이다.
2. 코민테른 세계대회와 통일전선
1) 코민테른 창립대회(1919.3.2~3.6)
코민테른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제2 인터내셔날의 사회배외주의적,기회주의적 입장에 반대하고,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저화하는 방침을 주장하던 러시아 볼셰비키와 각국 사회민주당 좌파를 중심으로 1915년 침머발트 회의와 1916년 킨달 회의를 경유하여 1919년…
2) 제2차대회(1920.7.19~8.7)
3) 제3차대회(1921.6.22~7.12)
4) 제4차대회(1922.11.5~12.5)
5) 제5차대회(1924.6.17~7.8)
신경제정책의 실시가 불가피해지자 코민테른은 이전의 방침을 재겸토하기에 이르렀다. 즉 대회는 1919년 창설 이래 정식하ㅗ해 온던 “각국 노동자계급의 ‘각적 프롤레타리아 독재 건설’ 목표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그를 위한 역량축적과 투쟁의 장기성 때문에 광범위하게 대중을 획득해야 한다”는 새로운 임무를 정식화하고 그를 위한 전술로써 ‘노동자계급통일전술’을 제기하였다. 따라서 좌익분파주의자의 모험주의에 대한 투쟁방침이 수립되고 소비에트 혁명을 추진하는 데서 요구되는 노동자계급의 다수획득을 위한 구체적 슬로건으로써 ‘대중속으로!’가 채택되었다. 이러한 전술에 따라 제2, 제2.5 인터내셔날과의 대표자회의(1922.4)가 모색되었고, 공산당의 조직형태는 볼셰비키원칙에 입각한 공장세포 건설로 이어지게 되었다.
4) 제4차대회(1922.11.5~12.5)
제3차대회의 방침에 따라 1921년 12월 소집된 집행위원회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준비하기위한 노동자계급획득운동 형태로서 ‘노동자계급통일전선’에 관한 테제를 채택한 뒤 독일공산당지부의 강령에서 제시된 ‘노동자정부론’을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대회는 집행위원회확대총회(1, 2차)에서 제시된 통일전선전술을 확인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의 혁명투쟁에서 가장 유리한 조건을 창출하기 위한 일반적 슬로건으로서 ‘노동자(농민)정부’방침을 승인하였다. 노동자정부론은 ‘위로부터의 통일전선’ 형태였다. 그러나 1923년 작센과 튀링겐에서 노동자정부가 궤멸하게 되자 코민테른 내에는 통일전선전술상의 지노비에프를 중심으로 한 좌익분파주의적 해석이 부상하게 된다.
5) 제5차대회(1924.6.17~7.8)
1921년 말부터 1923년에 이르는 코민테른의 통일전선정책은 전술적으로 제기되어 전략적 지행성을 갖는 것이었으나 1923년 유럽에서의 실패경험은 이 가능성을 폐절시키고 좌편향으로 물꼬를 트게 하였다. 대회는 ‘노동자정부’의 실패가 기존의 ‘위로부터의 통일전선’의 소산이라 규정하고, ‘아래로부터의 통일전선’에 기초한 ‘대중속으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