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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국악 발전사
1. 들어가며
조선 시대에는 유교를 숭상하여 예와 악을 중히 여김에 따라, 태조 때 음악을 관장하는 전악서와 아악서를 두었고, 정도전?하 륜 등이 납씨가?정동방곡?순덕곡 등을 지었다. 고려 때와는 달리 불교 대신에 유교를 국교로 삼은 조선은 예악(禮樂)을 존중하여 이를 정치, 교육의 근본 이념으로, 건국 초에 아악서(雅樂署)와 전악서(典樂署)를 설치하면서 조선조의 음악을 관장하기 시작하였다.
2. 세종
박연에 의한 아악의 정리와 맹사성에 의한 향악의 정립, 편종과 편경을 비롯한 새로운 악기 제작, 새로운 기보법인 정간보가 창안되기도 하였다. 한편 권 제?정인지?안 지 등이 지은 용비어천가를 가사로 한 `여민락`은 지금도 기악곡으로 연주되고 있으며, 정대업과 보대평 등이 작곡되었다. 세종에 이르러 박연, 남급, 정양, 맹사성과 같은 이론가에 힘입어 음악 사업을 활발하게 벌여 아악의 부흥, 향악의 창작, 악보 창안, 간행을 하였다. 아악기 제작으로 악기를 자급자족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는데, 당시 중요한 악기제작으로 편경(編磬)과 편종(編鐘)을 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간보(井間譜; 매정간이 시간단위를 표시하는 유량악보) 창안 및 악보출간을 들 수 있는데, <정대업> <보태평> <치화평> <취풍형>등의 신악이 이 기보법에 의해 악보화되었다. 이는 다른 기보에 비해 싯가(時價)가 분명한 점이 장점이다.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속악보는 용비어천가를 가사로한 여민락 만. 문묘악 그리고 세조실록 악보에 전하고 있는 정대업?보태평 등이다. 성종대에 차츰 당악기는 향악에 편성되는가 하면 악기 개량도 보인다. 이러한 악기들은 박(拍), 월금(月琴), 당비파, 장고, 해금, 아쟁, 당적, 당피리, 태평소 등이다.
향악은 『대악후보』 『시용향악보』 및 『금합자보』에 기보되었고, 특히 직업음악인이 아닌 선…
3. 성종
4. 영조
고수(鼓手)와 함께 긴 이야기를 소리와 몸짓, 아니리(말체)로 끌어 가며 청중을 울리고 웃기는 대중음악이다. 소리나 아니리의 여러가지 표현에 맞는 동작을 취하는 것을 발림(科)이라고 한다. 그리고 고수가 북을 치며 "좋지", "얼씨구" 등 감탄사나 흥을 돋구는 말들을 간간히 하는데, 이것을 추임새라고 하며, 이는 장단을 정확하게 치는 만큼이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판소리 초창기 인물로 우춘대(禹春大)를 비롯하여 권삼득(權三得), 모흥갑(牟興甲)등을 꼽을 수 있고, 그 후에도 박유전(朴裕全), 염계달(廉季達) 등 헤아릴 수 없는 명창들이 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