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제 1인터내셔날 시기의 사상투쟁
1. 노동조합주의
노동조합주의는 제 1인터내셔날 시기 영국의 대표적인 이념적 조류로서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노동자계급의 지위향상을 노동운동의 목표로 한정하려는 노선을 견지하였다.
이에 대해 맑스는 처음에는 관대한 태도를 취했다. 거기에는 망명을 묵과한 나라라는 측면과 그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대상이 영국의 노동자계급이라는 사정이 고려되었으며, 이것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당시 영국이 자본주의 발전의 선두주자이고 영국 노동운동의 전개양상이 후발 국가들이 뒤따를 전례가 되리라는 고려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일랜드 문제를 놓고 영국 노동자계급이 편협한 민족주의적 시각에 매달리자 맑스는 영국 노동운동의 실체를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으며, 이제까지 자제했던 공격의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후 맑스는 제 4차 바젤대회에서 아일랜드 해방의 결의안을 통과시키도록 노력하였으며, 이를 통해 영국 노동운동의 무기력을 고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맑스의 태도는 자본주의 발전과 식민지 수탈에 편승하여 상황의 급진적 변화를 원치 않았던 노동조합 지도자들에게 커다란 불안과 불만만 심어주었다. 이를 계기로 인터내셔날 총평의회와 영국 노동조합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통해 맑스는 혁명을 배우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혁명을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2. 프루동주의
프루동은 인터내셔날이 결성된 다음 해에 죽었지만 그의 영향은 프랑스의 노동운동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는 이념적으로 아나키즘과 방법적으로는 상호부조주의(mutualisme)를 제창했으며, 착취의 근절과 폐지를 동일한 투쟁대상으로 설정하면서도 경제적 수단에 의한 정치적 목표…
3. 라살레주의
4. 바쿠닌주의
의 상승이 아닌 그 저하이고, 노동조합은 자본의 공세를 저지하는 반격의 중심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반박하였다.
4. 바쿠닌주의
바쿠닌은 이념적으로 아나키즘의 사상에 동의하였으며 공적소유를 주장한 집산주의자였다. 바쿠닌의 주장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대목은 국가파괴에 대한 문제이다. 그는 국가파괴의 수단으로 비밀결사에 의해 추진되는 폭동을 들었으며 열심히 파괴를 설교하고 다녔다. 하지만 문제는 파괴후에 대해서는 전혀 대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바쿠닌은 모든 권력은 사악하기 때문에 권력의 계급성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국가를 파괴한 계급이 또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하는 위험만 방지하면 그만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맑스는 혁명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국가기구를 일정한 정도로 이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방하며 바쿠닌과 대치하였으며, 이 과도기의 새로운 권력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설정하였다.
혁명조직의 운영원리에서 바쿠닌은 총평의회의 권위주의를 비난하며, 그 임무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여기에는 바쿠닌의 지지기반이 주로 독립노동으로 생계를 버는 수공업자와 숙련노동자라는 사정이 참작되었다.
맑스는 이러한 요구가 단순히 인터내셔날의 조직원리에 대한 이견이 아니라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계략이라고 판단하고 제 5차 헤이그대회에 참석하여 바쿠닌을 제명해 버렸다. 그리고 그 반대세력의 역공을 피하기 위해 본부를 뉴욕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본부를 옮긴지 몇해 안되어 인터내셔날은 종언을 고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