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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과 언론 탄압
1. 들어가며
권력은 무력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정통성이 없는 쿠테타 수괴인 전두환씨의 권력획득은 전 사회적인 여론조작과 공포분위기 조성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언론을 모르는” 80년 쿠테타 세력에게는 이것은 커다란 숙제였다. 그러나 이들의 고민은 권력지향의 언론인들과 만나면서 해결됐다. ‘여론조작 기술’과 ‘권력의 단맛’ 이라는 교환조건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전두환 정권 창출’에 대한 언론인들의 기여는 전두환씨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 창출, 언론인 무더기 해직, 언론사통폐합 등 기획, 집행, 국가보위비상대책위(국보위), 국가보위법회의 등 ‘정권창출 기관’에의 참여 등 여러 형태로 이루어졌다.
2. 언론 왜곡의 현실
80년 초기 내부에서 제작거부 등의 일부 저항은 있었으나 언론은 신군부에 협조했다. 당시의 언론은 사실보도조차 막는 군부에 항의를 하기는 커녕 광주시민을 ‘폭도’로 비난하고 사실확인 없이 유혈사태의 책임을 시민과 학생들에게 돌리고 심지어 군부가 미리 연행해간 김대중씨 ‘사주’인 것처럼 몰아 지역감정과 지역문제로 격하시켰다. 이를 통해 신군부의 집권을 도와준 우호적 동반자로 5공 탄생을 찬양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편파 왜곡으로 진실을 호도하고 견강부회(牽强附會)로 약자를 괴롭히며, 양시쌍비론(兩是雙非論)으로 정의감을 혼란시키고 3S로 대표되는 저질문화에 번지르르한 포장을 씌워 대중문화를 오염시키고 국민의 정신을 황폐화시키고, 더 나아가 냉전적 반공 언론으로 통일세력들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다. 이들은 “유신체제는 자유민주주의의 토양을 닦는 일대 혁신조치”라고 찬양했다. 또 전두환정권에 대해서는 “민주주의를 토착화시키고 정의사회를 구현할 정권” 이며 “구국의 영웅 전두환 장군과 이순자 여사”를 목청껏 외쳐댔다. 언론은 광주를 이처럼 왜곡하고 철저하게 유린했다.
신군부에 저항했던 일부 기자들의 운…
3. 5공 정권의 언론 장악 정책
제력을 강화시킨 점이다. 문공부 아래 둔 홍보조정실은 그 대표적인 곳으로 이 기구를 통해 이른바 보도지침을 언론사에 강요함으로써 정보의 전달방향을 정부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했다.
넷째는 박정희정권과 마찬가지로 언론자본에 대한 경제적 특혜 등으로 언론을 회유, 유인하여 제도언론으로 고착시키려는 정책이었다. 3공과 달리 5공은 언론자본뿐만 아니라 일선언론인에게도 세제상의 특혜 등을 제공함으로써 침묵을 강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