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유럽 최고 서사시 일리아스에 대하여
1. 작가 호메로스
유럽 최고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작자인 그리스의 시성인 호메로스의 생애에 관해서는 확실히 알려진 것이 없다. 따라서 학자들 중에는 그를 실재 인물이 아니라 전설적 시인으로, 또는 개인이 아니고 편력시인의 집단명, 장님인 걸식시인이라고 보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이 두 서사시가 호메로스의 작품인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의 철학자 크세노파데스와 역시 기원전 5세기의 사학자인 헤르도투스의 저서에서 언급되는 역사적 증거 및 근대의 역사 학문, 고고학적 발견과 연구 및 언어학당의 조사연구에 의해 호메로스는 실재의 인물이고 이 두 서사시도 그의 작품이라는 것이 거의 정설로 되었다.
이 설에 의하면 호메로스는 기원천 900-800년경에 소아시아 이오니아 해변의 스미르나 또는 키오스섬(島)에서 살았으며, 작품 활동 역시 이 지방을 중심으로 하였고 이오스섬에서 사망하였다고 한다.
아무튼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두 편의 서사시는 완전한 예술적구성으로 당시 문화에 대한 지주적 존재였고, 서구의 시문학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그의 이름은 시인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문예사적인 면에서의 호메로스의 가치는 우선 형태와 플롯의 완벽한 통일성과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정서와 모티브의 파악, 보편적인 견지에서 본 위대한 인물들의 나무랄 데 없는 개성화, 인생의 위엄과 쾌락과 비극, 죽음의 고찰과, 종교와 윤리 등은 훗날 서구문명의 조류를 이룬 그리스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하여 방대한 스케일을 건전한 모랄에 의해 하나의 세계관으로 이룩한 데 그 영원성이 있다고 하겠다.
2. 내용요약
기원전 1200년경 트로이에는 푸리아모스란 선량한 왕이 있었는데 파리스라는 아이를 낳지만 왕비가 그 아이가 이…
3. 소재와 구성
이밖에도 『일리아스』에는
서사시를 보더라도, 비록 시간과 인물과 사건의 줄거리는 다소 변형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 뒤에는 반드시 역사적인 사건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리아스』의 이야기도, 기원전 1500년~1200년경에 뮈케나이를 중심으로 고도의 청동기문화를 누리던 아카이아족이 서북방에서 남하하기 시작한 미개한 도리스 족에 의하여 그들의 문화가 파괴되기 직전에 트로이를 정복했던 역사적인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트로이에서 발굴된 여러 층의 주거지 가운데 주거지 Vlla는 기원전 1200년경에 외부의 침입자에 의해 파괴되었음이 고고학계에 의해 입증되었는데. 이것은 희랍의 여러 기록들이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다고 하는 연대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러므로 아카이아 족이 그 뒤를 도리스 족에 밀려서 에게해의 여러 섬들과 소아시아의 해안 지방으로 이주하게 되었을 때, 그들의 토착적인 구전 문학도 함께 가져가 그것을 바탕으로 서사시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보아야한다.
『일리아스』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트로이전쟁이 역사적 사실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등장하는 개개의 인물들과 사건들이 관연 어디까지 역사적 사실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에 따른다면, 『일리아스』는 트로이전쟁이라는 역사적인 핵심에 많은 문학적 허구와 시대와 장소를 달라하는 다른 전설들이 첨가됨으로써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그 규모와 분량이 점점 방대해진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한 예로, 『일리아스』 제5권 627행 이하에서 로도스인들의 장수인 틀레폴레모스와 뤼키아인들의 장수인 사르페돈이 결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뤼키아는 로도스 섬의 맞은 편에 있는 육지이고 또 희랍전설에 따르면 틀레폴레모스는 로도스에 이주한 희랍인들의 지도자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의 결투는 희랍인들이 로도스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소아시아의 주민들과 싸워야 했던 역사적인 전쟁을 말해 주는 것으로서 트로이전쟁보다는 훨씬 뒤에 일어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일리아스』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일리아스』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