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외세로 인해 왜곡된 한국사
1. 일제 강점기로 인한 한국사(史)의 영향과 폐해
일제 강점기 36여 년간의 일본의 만행 이야말로 실로 엄청나며, 그 계획성과 치밀함에 있어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일본의 침략, 약탈, 제국주의 도구로 사용 한 것 이것들 보다 더 악랄한 죄악은 일본의 문화 말살 정책과 역사를 왜곡시킨 것이다. 일본의 문화 말살 정책으로 대 동화 단결이란 제국주의의 말도 안 되는 정당성을
내세워 우리 나라의 찬란한 독창적인 유 . 무형의 문화를 짓밟았다. 또한 한국사(史)의 일부를 은폐, 왜곡, 조작, 시키어 우리 민족은 사실 역사를 진실 역사에 의해 상당수 잃었다.
특히 한민족 문화 말살 정책으로 불리는 문화정책을 통하여 일제는 대한제국을 무력으로 차지한 후 식민지 수탈뿐만 아니라 한민족을 지구상에서 조연시키기 위하여 치밀하게 민족문화 말살정책을 폈다. 세계 제국주의의 약소민족 침략 사(史)에서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수탈은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이에 그치지 않고 한민족 문화 말살정책을 통해 한국인의 민족적 자부심을 파괴하고, `동화(同化)`라는 명분 아래 한국과 한국인의 존재를 역사무대에서 완전히 소멸하고자 하였다. 일제의 한민족 문화말살정책은 다양한 형태로 추진되었으나 대체로 ①식민주의 교육정책, ②역사왜곡(식민주의 사학), ③신도(神道)를 비롯한 일본 종교의 침투, ④한국어 말살?성명말살(창씨개명), ⑤황민화(皇民化) ⑥.노예정책, 문화재 파괴와 약탈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일제의 문화 말살정책은 초기에는 주로 식민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개되었으나, 말기에 이르러서는 침략 전쟁 수행을 위한 경제 수탈에 더 비중이 두어졌다. 따라서 민족 말살정책의 심도는 더욱 강화되어 , 우리말 …
2. 중화사상과 유교학이 한국사에 주는 영향
조선이 중국과 관계를 맺은
, 화(華)는 문화라는 뜻이다.
중국은 예전부터 ‘중화사상’이라 하여, 자국의 문화를 제일이라 여기며 다른 나라의 문화를 수용하려는 자세보다는 자신들의 문화에 심취하여 보수적인 외교관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의 중화사상은 전통 의식에 근거하여 과거 중국의 종속국에 대한 권위를 회복하고 대(大)한족 우월주의로서 주변국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있어 저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중화사상과 관계되는 민족주의가 중요한 배경을 이루고 있다. 중국이 민족의 단결을 강조하는 것은 정권 수립 당시 신생국으로서 혁명의 미완성 단계에서 이를 전략 전술로 이용하려는 것 이외에도 대외적으로 안보를 견지하고, 대내적으로 체제 안정을 기하는 데 있어 국민의 정신적 기반을 구축하려는 데 그 뜻이 있었다.
우리 나라에 중화사상이 들어오게 된 것은 조선이 개국하여 고려의 국교인 불교를 배제하고, 신진세력인 유학파의 힘을 업어 왕권 강화를 시행하고자 유교를 받아들이고, 국교로 정하면서부터 이다. 이 또한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신생국의 미완성 단계를 중국과 연결하여 대외적으로는 안보를 대내적으론 체제 안정 꾀하는데 이유가 있다. 중화사상은 처음 훈고학적 측면에서 학문의 자긍심에 의한 긍지를 지닌 것이지만, 차츰 성리학의 유행과 발전으로 인해 보수적이며, 국수적이고 타민족 배타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성리학이 유행하여 발전하였다. 우리 나라는 성리학을 받아들이면서, 성리학의 주장을 중국과 일맥상통하게 보는 것과 우리 나라의 독창적 성리학의 발전과 연구가 이루어지는 것 이 2가지 사상이 있었다. 전자가 바로 소위 말하는 우리 나라를 ‘소중화’로 여기는 중국적 사대주의와 중화사상을 따른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조선시대의 유교학을 생각한다면 거의 이렇듯 생각한다. 조선은 대외, 내의 안정을 위해 중국 밑으로 들어가 중국을 아버지의 나라로 섬기고, 중국의 간섭을 만이 받았다고 여긴다. 일부는 맞으나 이건 편견이다.
조선이 중국과 관계를 맺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