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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당시의 그리스에 대하여
소크라테스가 태어나기 전 아테네는 그리스 남부에 위치한 아티카 지방의 수도로서 작은 도시국가에 불과했다. 그러다 기원전 594년 솔론이 집정관이 되면서 아테네는 변하기 시작했다. 솔론은 귀족정치를 몰아내고 재산에 따라 시민을 네 등급으로 분류하여 합당한 권리를 부여했으며 채무노예 제도를 폐지하는 등 이른바 ‘솔론의 개혁’을 단행했다. 이로써 그리스 본토에 산재해 있는 폴리스 중에서 민주형태의 도시국가가 처음 등장한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 본토라고 칭한 것은 그리스 식민도시와 구분하기 위해서다. 그리스 본토는 대부분 산악지대여서 경작지는 산간분지와 하구평야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당연히 초기 개척민들 사이에 좋은 영토를 선점하기 위한 각축전이 전개됐고 그 과정에서 패하거나 더 나은 터전을 얻으려는 부족들은 그리스 밖으로 눈을 돌렸다. 그로 인해 가까운 소아시아―오늘날의 터키―나 이탈리아, 이집트 연안에 많은 식민도시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스 식민도시는 원주민을 지배하는 형태의 식민지와 달리 자국민들이 직접 그 땅에 정착하여 그리스화한 도시들이었다.
도로망과 교통수단이 열악한 고대에는 육로보다 해로가 빠르게 발달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점에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그리스는 일찍부터 해양으로 눈을 돌리기 좋은 위치였다. 그리스 신화로 전해오는 아르고호의 이야기 등은 이들 민족이 거친 파도를 뚫고 미지의 세계를 정복하는 바다의 모험을 그린 글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바다에 접해 있는 반도국들이 모두 그리스와 같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스 민족이 서양 고대사에서 가장 찬란한 문명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지중해 덕분이었다.
지중해는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삼 개 대륙에 둘러싸여 있다. 그 중 반도국인 그리스는 지정학적으로 식민도시의 거점을 확보하여 대외무역과 문…
그들을 밀레토스 학파라 불렀다. 밀레토스에서 태동한 철학의 첫 모양새는 자연과학과 어우러진 것이었다. 이천 오백 년이 지난 지금도 물리학자들이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근본원소를 찾고 있듯 서양 역사상 최초의 사상가들 역시 물질을 이루는 근본원소를 규명해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설명하고자 했다.
그리스 본토를 사이에 두고 소아시아 반대쪽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해 있던 식민도시 엘레아에서도 일군의 학파가 등장했다. 크세노파네스, 파르메니데스, 제논 등으로 대표되는 엘레아 학파는 기존의 종교와 사상에 대해 훨씬 비판적이었다. 그들은 그리스의 다신을 부정하고 유일신을 주장했으며, 자연철학자들이 말하듯 근본적인 원소의 운동으로 만물이 생성?변화한다는 것은 감각의 오류일 뿐, 존재는 공간에 가득 차 있으며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사유만이 옳은 것이라 보았다.
이처럼 그리스 식민도시에서 발달한 사상의 물결은 기원전 5세기에 들어서면서 큰 변화를 겪는다. 오리엔트의 패권을 쥔 페르시아가 소아시아를 점령해 버린 것이다. 그 바람에 자유로운 사상 활동에도 구속과 제약이 따르자 많은 철학자들이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 본토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더욱 앞당기는 계기가 된 것은 서양 고대사에 거대한 한 획을 그은 페르시아 전쟁이었다.
막강한 권력과 부를 누리던 고대 페르시아 제국은 지중해권으로 세력을 뻗쳐 그리스 본토에 대한 본격적인 침략을 감행했다. 하지만 기원전 492년부터 기원전 478년 사이 세 차례에 걸친 대접전은 아테네의 수군과 스파르타의 보병이 주축이 된 그리스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특히 기원전 490년에 치른 마라톤 전투는 아테네의 위상을 한껏 드높였다. 에게해를 가로질러 마라톤 평야에 상륙한 2만 5천의 페르시아군은 1만 명으로 중무장한 보병들이 밀집대형을 구사한 아테네군의 전술에 참패하고 말았다. 그 때 올림피아 경기의 달리기 선수 출신인 아테네 병사 페이디피데스는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40킬로미터의 거리를 단숨에 달려와 승전보를 알린 후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