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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고타마 싯다르타)의 어린 시절에서 출가까지
숫도다나왕은 이토록 귀하게 태어난 아기 석가모니의 이름을 고타마 싯다르타라고 지었다. 고타마는 성이고, 싯다르타는 ‘소원을 성취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결혼 후 이십여 년이 지나 가까스로 대를 이을 아들을 보았으니 왕은 소원을 성취한 것이다. 그렇지만 마야왕비는 아들을 낳은 지 칠일만에 세상을 뜨고 만다. 아들을 얻은 대신 부인을 잃은 숫도다나왕은 당시의 풍속에 따라 마야왕비의 여동생인 마하파자파티를 새왕비로 맞아 태자의 새엄마로 삼았다. 태자는 부왕과 이모의 극진한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훌륭한 소년으로 성장했다. 태자가 점점 커갈수록 그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나’ 역시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석가釋迦는 범어 사카Sakya, 모니牟尼는 성자를 뜻하는 무니muni의 음역으로 석가모니는 석가족 출신의 성자라는 뜻이다.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붓다Buddha라는 호칭이 따른다. 이처럼 싯다르타가 인류의 성자 석가모니 붓다가 된 데에는 우선 그의 천성이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싯다르타는 대단히 총명한 데다 천부적으로 깊은 감성과 사고를 타고났다. 학습을 통해 사물과 언어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기도 전인 어린 나이에 그의 감성은 이미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천착했다.
그 누구도 예외가 있을 수 없으며 모두가 직면할 수밖에 없는 문제!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자기의 탄생과 맞바꾼 어머니의 죽음이 어린 싯다르타의 감성을 자극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과거에 살았고 현재 살아있으며 앞으로 살게 될 모든 것들의 죽음이 싯다르타의 의식 속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왜 사라져야 하는 것일까?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싯다르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허를 느꼈다. 그것은 시작도 끝도 없는 미망이었다.
죽음을 화두처럼 달게 된 어린 싯다르타는 홀로 골똘히 생각에 잠긴 경우가 많았다. 그…
솟아 있는 히말라야산맥 뒤로 펼쳐진 투명에 가까운 파란 하늘과 무수한 별들이 눈송이를 뿌리며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같이 티없이 맑은 카필라성의 밤하늘은 어린 싯다르타에게는 끝없는 사색의 바다였으리라.
어느 날이었다. 궁전 안의 생활이 갑갑했던 태자는 궐 밖으로 바람을 쐬러 나갔다. 태자의 행차가 동쪽 성문을 나설 때였다. 앞에서 한 사람이 걸어오는데 머리는 백발이 성성하고 몰골은 주름투성이인 데다 몸은 노쇠해 간신히 지팡이에 의지한 채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놀란 태자는 곁의 시종에게 그가 왜 그런 지를 물었다. 사람이 늙으면 그처럼 된다는 것을 알게 된 태자의 마음은 몹시 착잡했다. 태자는 그 길로 마차를 돌렸다. 다른 날 태자는 남쪽 성문으로 나갔다가 이번에는 몹쓸 병에 걸려 길에 쓰러져 있는 행려병자를 발견했다. 또 다른 날 태자는 서쪽 성문으로 나갔다가 시체를 메고 지나가는 장례행렬을 목격했다. 그리고 북쪽 성문으로 나간 어느 날, 태자는 출가사문을 만나 생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행의 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 자궁의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늙고 병들어 죽어야 하는 고통의 길이 시작되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태자가 출가사문의 길을 택하게 될 인연임을 극화한 설화일 듯 하다.
숫도다나왕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태자 탄생 시, 관상을 본 아시타선인은 아기가 장차 왕이 되면 천하를 재패할 전륜성왕이 되겠지만, 출가를 하게 되면 인류를 구원할 붓다가 될 것이라 예언했다. 처음 그 말을 들은 부왕과 석가족 사람들은 몹시 기뻐했다. 태자야말로 부국강병한 나라를 이끌어 코살라국의 통치에서 벗어나게 할 성군의 재목감으로 여겨졌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듯 태자는 무척 총명한 데다 문무에 모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태자는 자랄수록 늘 혼자 있기를 좋아했고, 사색은 더욱 깊어졌다. 이러다 태자가 출가하는 쪽으로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을까하여 부왕의 고심도 날로 커졌다. 숫도다나왕은 태자의 출가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방책을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