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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의 국악 발전
1. 고구려
고구려의 재상 왕산악은 진나라 의 7현금을 본떠 우리 민족에 알맞은 거문고를 제작하고, 또 악곡을 지어 연주하였다.이와 같이 고구려는 중국과 서역계와의 교류를 통해 많은 악기를 들여와 우리 생활에 알맞게 개조하여 사용하였다.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보다 일찍 중국 및 서역과 교통하고 문물을 교역한 나라로서 음악이 고대 한반도의 어느 나라에 견줄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중국과 서역에서 들여온 음악과 악기, 춤, 놀이들을 고구려화시켜 이전의 고구려 음악과 합쳐서 고구려 사람들에게 맞는 매우 수준 높은 음악을 만들고 또 이러한 음악을 중국에서까지 받아들이게 되었다.
2. 백제
선사 시대의 마한땅을 중심으로 왕국을 건설한 백제는 고대 음악을 알 수 있는 역사적 자료가 부족하여 음악에 대한 내용을 잘 알기 어렵다. 선사 시대로부터 있어 온 제천 의식과 백제인들이 불렀던 노래들이 일시에 없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며, 게다가 남부 중국과 교역함으로써 음악이 상당히 발전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백제(B.C.18년 ~ A.D. 660년) 음악 전체를 한 시기로 묶는다. 이 시대의 음악은 중국의 남송이나 북위 등에 소개되었고, 일본에도 전래되었다. 일본 서기에 의하면 백제의 악인 삼근?기마차?진노?진타 등의 악사와 악기와 춤을 가르쳤다. 특히 미마지는 7세기 초에 중국의 오나라에서 기악무를 배워 일본에 전하였다. 백제의 음악문화는 지리적인 조…
3. 신라
또한, 민간에서 널리 불려졌던 가요로 향가가 있는데, 당시 위흥과 대구 화상에 의해 향가가 수집, 편찬되었으나, 지금은 25수의 가사와 제목만 전하고 있다.
4. 통일신라
의해 향가가 수집, 편찬되었으나, 지금은 25수의 가사와 제목만 전하고 있다.
이시대의 음악문화는 불교음악이 본격적으로 전래 되었으며, 궁중에서는 삼현삼죽(가야금?거문고?비파?대금?중금?소금)이 주축을 이루는 향악의 전통을 수립하였다. 신라고유의 향토음악 향악은 삼현삼죽과 박판(拍板)?대고(大鼓)?가(歌)?무(舞)로 이루어져 훨씬 다양하고 화려해졌다. 이는 서역의 악기 향비파, 당나라의 악기 박판?대고 등을 복합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4. 통일신라
문무왕 8년(668년) 신라가 통일되었는데, 거문고는 이 당시에 고구려로부터 전해진 것 같다. 그 뒤 거문고가 연주되지 않고, 신기(神器)로 간주되어 월성(月城) 천존고(天尊庫)에 보관되어 오다가 9세기경부터 일반인들이 연주 악기로 사용하기 시작 하였다.
국가가 안정되고 문화가 팽창됨에 따라 신라의 궁정은 의식을 제정하여 집행하게 되고, 의식에는 음악 연주를 수반할 수밖에 없게 된다. 궁중의 의식 음악은 예고됨이 없이 항상 열리는 것도 있으므로 음악인을 궁중에 상주시켜 연주, 행정, 교육을 담당할 음악 기관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 음악 기관이 음성서(音聲署)이다. 음성서가 설치된 연도는 확실하지 않으나 진덕왕 5년(651년)에 음성서의 관리를 임명했는데, 음성서는 늦어도 진덕여왕 이전 7세기 중엽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