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붓다 (석가모니) 의 핵심사상에 대하여
인간번뇌의 가짓수는 팔만사천번뇌에 달하기 때문에 붓다는 이 번뇌를 멸하기 위해 팔만사천법문을 설했다 한다. 이처럼 방대한 붓다의 법문을 소개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붓다는 팔만사천법문을 단 한 마디로 요약해서 들려준다. 불법비불법佛法非佛法. 불법은 불법이 아니다. 《금강경金剛經》〈제8장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에 나오는 이 글귀는 붓다가 팔만사천법문을 설하고 나서 나는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한다. 법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단이요 도구일 뿐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려야 하듯 피안에 닿았으면 법마저 버리고 완전한 열반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자도 그의 저서 《도덕경道德經》첫 구절에서 같은 얘기를 한다.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도가 도면 도가 아니다.
붓다가 속세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출가하여 구도의 길을 걸은 데는 그의 세계관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붓다의 세계관을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삼법인三法印이다. 불교의 초기 경전을 보면 붓다가 존재의 특성을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로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세상은 덧없으며, 괴롭고, 실체가 없다는 얘기다. 이것이 후대에 내려오면서 삼법인으로 확립되었다.
첫째 법인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모든 행은 항상恒常이 없다. 말 그대로 하면 모든 움직임은 무상하다는 얘기다. 행行이란 단어에는 참으로 놀랍고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다. 만유일체 중에 움직이지 않는 것이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바람도, 바람 속의 먼지도, 지구도, 우주도 움직인다. 그 우주 속에 담겨 있는 미생물은 물론이고 무생물도 자장을 띠고 있는 초미립자의 형태…
무명無明. 명은 지혜와 밝음을 의미한다. 지혜와 밝음이 없는 무명은 무지와 어둠이다. 탄생의 출발은 바로 이 무명에서 비롯된다. 시작이다. 시작되지 말았어야 했는데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시작된 것이다.
과일 뿐이라고 역설한다. 그러므로 그 원인을 제거한다면 고통에서 벗어날 길도 열리는 것이다. 붓다는 연기법緣起法을 통해 그 근본적인 원인을 규명하고 있다.
연기緣起란 말 그대로 ‘연緣하여 일어난다起’는 뜻이다. ‘이것이 있음으로써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김으로써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음으로써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함으로써 저것이 멸한다此有故彼有 此生故彼生 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 즉, 태어남이 있음으로써 죽음이 있고, 태어남이 생김으로써 죽음이 생긴다. 그러므로 태어남이 없다면 죽음이 없고, 태어남을 멸하면 죽음을 멸한다. 지금까지 절대적인 것으로 믿었던 죽음 역시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 절대로 피할 수 없다고 믿었던 죽음을 상대로 새로운 운명이 개척된 것이다. 죽음이 태어남으로 인해 생긴 것이라면 태어남 역시 그 원인이 있을 수밖에 없다. 붓다는 연기의 법칙에 의거해 죽음이 생겨나게 된 근본원인을 추적해 내려갔다. 그리하여 무명無明이 모든 생사의 근본 원인임을 밝혀냈다.
연기법은 추상적인 관념과 형이상학적인 추론을 배제하고 오로지 관찰을 바탕으로 죽음의 원인을 규명한 세계 사상사에 유래가 없는 학설이다. 그것을 차례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하지만 범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상이기에 주관적인 가설 하에서 살펴보았음을 양해 바란다.
무명無明. 명은 지혜와 밝음을 의미한다. 지혜와 밝음이 없는 무명은 무지와 어둠이다. 탄생의 출발은 바로 이 무명에서 비롯된다. 시작이다. 시작되지 말았어야 했는데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시작된 것이다.
행行. 탄생을 향한 움직임이다. 무엇이 움직이냐고 한다면 탄생에 대한 욕망? 아니면 탄생에 대한 착각? 그것도 아니면 한 번 움직여 보고 싶어하는 움직임? 물리학에서 보자면 최초의 행은 빅뱅BigBang―우리의 우주는 시간도 0이고, 공간도 0인 한 점과 같은 상태에서 최초 대폭발로 인해 생겨났다는 이론―인지도 모른다. 불가에서는 업의 기운―일종의 에너지?―이 운기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