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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무기 보유의 정치적 의미
1. 핵보유국의 지위와 체제 유지
원래 북한의 핵무기개발은 선군정치와는 무관하게 시작됐으나 핵 보유 선언에 이어 핵실험까지 단행한 북한은 핵무기가 선군정치의 ‘자랑스런 산물’이라고 주장하면서 남한도 같은 동포로써 자긍심을 갖자고 선전한다. 북한은 선군정치가 5천년 민족사에 핵무기 보유국의 지위를 갖게 했고 이를 통해 민족의 위대함을 세상에 떨쳤다면서 남한은 이를 반대할 것이 아니라 경축하고 핵무기를 개발한 북한 과학자들의 노고에 찬사를 보낼 것을 촉구했다. 북한은 그들이 핵무기 보유국임을 선포한 것은 단순한 군사적 위력의 선포가 아니라 ‘선군정치의 조국’이 “세계 최강국의 위치에 올라섰음을 확인시켜주는 력사(역사)적인 사변”이라고 강조하면서 “합법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한 데 대해 자부감(자부심)을 느낀다”며 선전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결의 채택 등 국제사회의 압력이 가중되는 가운데 북한은 2006년 10월 20일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서 10만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핵실험 성공 환영 군?민대회를 개최하고 선군정치를 강조했다.
또한 핵실험 직후 평양시내는 핵보유국을 알리는 붉은색 구호판이 곳곳에 내걸린 가운데 주민들 역시 핵보유국임을 공공연히 자랑하며 자긍심을 드러내고 있다. 평양역 광장을 비롯한 시내 여기저기에는 “핵보유국이 된 5천년 민족사의 역사적 사변을 길이 빛내이자”, “핵보유국의 당당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제국주의자들의 온갖 도전을 단호히 짓부수자”, “핵보유국으로 일떠(일으켜) 세운 김정일 원수님 고맙습니다” 등의 구호가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찬양하는 구호만큼이나 많이 나붙어 있다
2. 북한의 핵보유 목적
북한의 핵 개발 동기와 목적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과 해석이 있을 수 있다. 북한이 핵카드를 들고 나온 이유는 …
3. 북한의 핵 사용 가능성
7월 11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김일성은 <핵개발을 해야 (통일전쟁에서) 열강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다소 민족주의적 관점>이었지만 김정일은 <핵개발로 조국통일을 시작하고 총화(마무리)한다는 호전적 입장> 이라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김정일은 자신을 ‘핵개발의 총사령관’으로 자처하는 등 핵개발에 ‘올인’ 하면서 스스로 “노동당 131 지도국(핵개발 담당기구)은 나의 친위대다. 나는 핵개발의 총사령관”이라고 공언할 정도로 핵개발에 적극적 이었다는 것이다. 1985-1987년 영변 핵 단지인 ‘5기계공업총국’(분강지구)의 4월기업소(우라늄 정련공장)에서 근무했으며 1992년부터는 서해지구 채취대장으로 ‘710호 자금’(핵개발자금)을 마련하다 1994년 4월 중국을 통해 남한으로 입국한 김씨는 북한이 1989년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했고 1992년 저온에서 핵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저폭뇌관 기폭장치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1987년은 북한이 4천KW용량의 연구용 원자로를 완공한 해이다. 김일성은 1980년대 들어 비밀리에 원폭을 개발하던 파키스탄에 기술자들을 보내 원자력 기술을 익히는 등 약 3천여명의 연구 인력을 투입하여 내밀하게 핵 개발을 추진해왔다. 그 결과 몇 차례 개량을 거쳐 이제 5MW급 원자로를 가동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은 그러나 그 후 핵 개발을 집요하게 추적해온 미국에 대해 “미국은 핵 개발의 죄를 뒤집어씌워 우리(북한)를 압살하려 한다. 미국이 핵무기를 1만개 이상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 때문에 한 두개 만들어 세상 사람들을 웃기겠는가” 라며 핵무기 개발사실을 부인했다. 김일성은 1994년 4월 13일 쿠바 프렌사 라티나 통신사 사장과 회견에서 “우리가 자체의 힘과 기술로 핵시설을 건설한 것은 나라의 동력 기지를 더욱 강화하려는 데 목적이 있으며 우리의 핵 활동은 어디까지나 평화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한 두번만 천명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핵무기를 개발할 필요도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