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북한의 통일정책 변천과정 연구
1. 들어가며
북한의 통일방안은 ‘남조선혁명’을 목표로 하는 대남전략을 기조로 하여 시대적 조건과 환경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 왔다. 북한의 초기통일방안은 ‘하나의 조선’ 논리에 입각, 북한을 혁명 수출기지로 삼아 남한을 적화하겠다는 ‘민주기지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대남 위장 평화공세를 전개하는 가운데 실천으로 옮겨진 것이 6.25 남침이었다.
‘민주기지론’은 1960년 4.19 혁명 이후에 ‘남조선혁명론’으로 발전되었고, 이때 북한은 과도적 조치로서 남북연방제를 처음으로 제기했다(1960.8.14). 이는 4.19후 우리의 정치?사회적 혼란기에 ‘과도적 통일형태’로서 제기된 것이다.
‘남조선혁명론’과 연방제 통일방안은 1973년의 ‘고려연방제’를 거쳐 19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으로 발전됐다. 이 방안에서 북한은 남북의 사상과 제도를 인정한다는 원칙을 내세우면서도 반공정권의 퇴진과 미군철수 등을 선결조건으로 되풀이 했다. 그러나 북한의 연방제 주장은 북한이 대내외적인 당장의 통일을 주장하기보다는 제체의 유지?보호라는 쪽에 무게를 싣기 시작했으며 이는 1990년대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에 기초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전환됐다.
1991년 김일성 주석의 신년사가 그 예(例)다. 그는 “통일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구에게 먹히우지 않는 원칙에서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개의 제도, 두 개의 정부에 기초한 연방제 방식으로 실현되어야 한다”면서, “제도통일은 후대에 맡기고 지역 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며 통일을 점차적으로 완성하는 문제도 협의할 수 있다“ 천명함으로써 종전 입장에서 후퇴했다.
2. 정권수립 초기의 무력적화통일방안
광복 후 6.25 전쟁까지 북한의 통일방안은 ‘민주기지론’에 입각한 무력통일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
3. 1960년대 남북연방제 (남조선혁명론)
4. 70년대 고려연방제 통일방안
20일 노동당 정치위원회에서 “연방제로 남조선을 끌어안아 소화시킬 수 있다”며 연방제 연구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그 후 약 3개월의 연구?토론 기간을 거쳐 김일성은 1960년 8월 14일 8.15 광복 15주년 기념연설에서 처음으로 연방제를 제의했다.
김일성은 이 연설에서 “어떠한 외국의 간섭도 없이 민주주의적 기초위에서 자유로운 남북총선거를 실시하는 것이 평화적 조국통일의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편”이라면서 “만일 그래도 남조선 당국이… 아직은 자유로운 남북총선거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과도적인 대책으로서 남북 조선의 연방제를 제의한다”고 했다.
그 내용은 “당분간 남북 조선의 현 정치제도를 그대로 두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와 대한민국 정부의 독자적인 활동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두 정부의 대표들로 구성되는 최고민족위원회를 조직하여 주로 남북조선의 경제?문화발전을 통일적으로 조절하는 방법으로 실시하자”는 것이었다.
4. 70년대 고려연방제 통일방안
북한의 남북연방제는 1971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4기 5차 회의에서 “현정세와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촉진시킬 데 대하여”라는 북한 외상 허담의 보고에서 8개항의 대남제의를 통해 다시 제시되었다. 허담의 8개항 대남제의는 북한의 통일정책의 주요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그 내용의 요지는 ① 미군철수 ② 10만 이하로의 감군 ③ 한미방위조약 등 민족의 이익에 배치되는 조약의 폐기 ④ 남북 총선거 ⑤ 각 정당 사회단체의 활동 보장 ⑥ 과도적 조치로써 남북연방제의 실시 ⑦ 광범위한 교류의 실시 ⑧ 이상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정치협상회의 개최 등이었다.
그 후 김일성은 남한의 6.23 선언 발표가 있은 당일인 1973년 6월 23일 북한을 방문한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총서기 구스타프 후사크 환영대회 연설을 통해 ‘조국통일 5대강령’이란 것을 내놓았다. 이는 허담의 8개항을 단순화한 것인데 그 요지는 ① 남북간의 군사적 대치상태의 해소와 긴장상태의 완화 ② 남북간의 다방면적인 합작과 교류의 실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