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봉건사회로부터 자본주의로의 이행 형태 연구
1. 봉건사회의 기본구조
봉건사회는 지주에 의한 토지와 자연자원의 독점을 경제적인 기초로 한 사회로 봉건귀족과 농노의 대립을 계급대립의 기초로 하는 사회였다. 봉건제는 고대 노예제가 무너진 후 새롭게 성립된 생산양식이었다. 봉건제 생산양식은 이미 노예제 사회 내부에서 콜로나투스라는 형태로 싹트고 있었다. 콜로나투스 속에서 토지를 경작했던 농노들은 노예와 자유인의 중간적인 지위를 갖고 있었다. 이들은 생산물의 대부분을 영주에게 바쳐야 했으며, 강제부역등의 의무조항을 갖고 있었지만, 소작료를 제외한 부분에서는 자기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기술개발, 도구개선 등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생산력의 발전을 보장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것이 노예제 사회가 진행되면서 봉건제 사회가 성립할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
봉건제 사회의 농노는 땅에 묶여 이동의 자유도 없었으며 지주의 땅에 부역을 바치고, 나머지 시간에 보잘 것 없는 자기 땅을 경작하여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였다. 봉건사회는 지역간 나라간 교역도 작아 폐쇄적이며 발전 속도가 더딘 농업사회였다. 이러한 착취를 보장하기 위해 봉건영주들은 엄격한 신분제, 신분제를 합리화하는 종교적 교리, 토지약탈을 위한 영주들 간의 무력전쟁과 농민동원 등에 의존하였다.
2.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
봉건제 사회속에서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맹아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생산력의 발전은 자신이 생산한 상품 중에서 자신이 소비하고 남은 부분을 타인의 노동생산물과 교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했다. 지역 안, 지역간의 교환이 활발해진 결과 교환에 사용되는 일반적 등가물로서 매개물로서 화폐가 널리 사용되고, 상업을 주요 기능으로 하는 도시가 형성되게 된다.
15세기 말 지리상의 발견과 함께 무역, 교환수단과 상품의 …
3. 부르주아지의 등장과 그들의 혁명적 역할
제를 형성한다는 점이다. 이점은 고대 노예제, 봉건제의 절대왕정에 비하여 시민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측면에서 계급투쟁에 의해 획득되어진 진보적인 측면과 함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온존시키기 위하여 성립된 적합한 정치체제라는 측면을 동시에 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다른 무엇보다도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채, 자신의 노동력으로 생계를 꾸려나갈 수 밖에 없는 노동자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노동자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노동력을 자기마음대로 팔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는데에 봉건제적인 관습, 신분제 등은 하등의 도움이 될 것이 없었으며, 오히려 질곡으로 다가왔고, 이에 자본가 계급은 새로운 정치체제로서 형식적 민주주의와 자유가 보장되는 자본주의적 정치체제를 성립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에게 보장된 자유는 실지로는 ‘굶어 죽을 것인가’ 아니면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팔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였으며, 어느 자본가에게 자신을 팔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 이상은 아니었다.
3. 부르주아지의 등장과 그들의 혁명적 역할
부르주아지는 봉건귀족의 지배하에서는 피억압계급으로 자립적 도시공화국의 무장자치단체로 있거나 국왕의 과세대상으로서 제3신분이었으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발전과 함께 귀족에 대한 대항세력으로 국왕에게 봉사하였으며, 점점더 배타적인 정치적 지배권을 행사하게 된다. 부르주아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새로운 군주로서 봉건제 사회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혁명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부르주아지의 혁명적 역할로서 다음의 것들을 들고 있다.
하나, 부르주아지는 봉건적 가부장적, 농촌적 관계, 인간의 상하관계를 규정짓는 잡다한 신분적 관계들을 냉혹한 현금지불관계로 만들었다.
둘, 부르주아지는 끊임없는 시장확대의 필요와 요구로 세계시장의 착취를 통하여 각 나라의 생산과 소비에 범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