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차례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 발전사 개요
1. 들어가며
영국에 비해 정치경제의 근대화가 늦은 독일에서는 영국의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의 자유방임사상에 비판의 눈을 돌린 새로운 학파가 형성되었다. 역사학파는 Friedrich List (1789~1846)에 의해 시작하여 Wilhelm Roscher (1807~1894), Bruno Hildebrand (1821~1878), Karl Knies (1821~1898), Gustav Schmoller (1838~1927), Ludwig Joseph Brentano (1884~1931)를 거치면서 형성된 독일 특유의 경제학파이다.
2. 역사학파 성립의 사회적 배경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전반에 걸친 독일 정신사의 조류, 계몽주의에 대항하여 독일 고유의 신비적, 사변적, 형이상학적 경향을 주장함으로써 18세기 후반 이후 점차적으로 형성되었다. `슈트롬 운트 트랑(Stromund-Drang)운동이 그 발단이 되었다. 낭만주의 이...
본문/내용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 발전사 개요
1. 들어가며
영국에 비해 정치?경제의 근대화가 늦은 독일에서는 영국의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의 자유방임사상에 비판의 눈을 돌린 새로운 학파가 형성되었다. 역사학파는 Friedrich List (1789~1846)에 의해 시작하여 Wilhelm Roscher (1807~1894), Bruno Hildebrand (1821~1878), Karl Knies (1821~1898), Gustav Schmoller (1838~1927), Ludwig Joseph Brentano (1884~1931)를 거치면서 형성된 독일 특유의 경제학파이다.
2. 역사학파 성립의 사회적 배경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전반에 걸친 독일 정신사의 조류, 계몽주의에 대항하여 독일 고유의 신비적, 사변적, 형이상학적 경향을 주장함으로써 18세기 후반 이후 점차적으로 형성되었다. `슈트롬 운트 트랑(Stromund-Drang)운동이 그 발단이 되었다. 낭만주의 이론을 개척한 사람은 슐레겔 형제, 특히 아우인 프리드리히였다. 그는 객관에 대한 주관의 절대적 자유를 부르짖고 이를 무한히 동경하며, 환상을 사랑하고, 이른바 형식의 속박을 혐오하며 자아를 숭배했다. 그밖에 마술적 관념론의 시인인 노발리스, 티크(L.Tieck, 1773~1853) 등이 전기 낭만파에 속한다. 독…
역사학파는 구역사학파의 대표적인 학자로는 롯셔(Wilheelm Roscher), 힐데브란트(Bruno Hildebrand), 크니이스(Karl Knies), 등인데, 주로 경제발전의 역사주의, 경제적 발전법칙, 국민경제의 역사적, 상대적 법칙 등을 강조했다.
신역사학파의 대표적 학자는 슈몰러(Gustav von Schmoller), 브렌타노(Ludwig Brentane), 바그너(Adolf Wangner) 등인데 주로 급진적 마르크스주의를 의식해서 중산층 계급의 창조 및 유지, 노동조합과 노동자 단결의 자유, 그리고 국가사회주의 등을 강조했다. 독일 역사학파는 별반 이론적 유산을 남기지 않았다고 하나, 역사와 정책면에서 많은 공적을 남겼다. 경제사의 본격적 연구는 역사학파에서 시작되어 영국?프랑스의 경제사연구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독일의 경제적 후진성을 탈피하기 위해 19세기에 등장한 학파이다. 그 당시 독일은 후진적인 경제구조 하에서 영국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에 따라 독일은 강력한 국가권력을 바탕으로 경제생활의 모든 분야를 보호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구역사학파의 리스트(F.List)는 농공 상태에 있는 독일이 논공상태에 있는 영국과 대항하기 위해서는 보호무역주의와 유치산업보호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신역사학파의 슈몰러(G.Schmoller)는 역사적 연구를 통해 귀납법적 방법으로 윤리적 국민공동체의 이론을 전개하였고, 사회보장정책을 적극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4. 마치며
결국 독일 역사학파는 고전학파 이론의 추상화와 연역화에 반대하고 구체성 과 개별성을 중시하였다. 따라서 국가의 발전단계에 따라 경제이론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결국 후진적인 독일 경제의 중심과제는 생산력 배양에 두고 국부를 창조할 수 있는 힘의 축적을 중요한 과제로 생각한 것이다. 이에 따라 개인의 이기심도 사회적 이익 밑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