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대안적 언론활동의 진정한 의미
1. 들어가며
자본주의적 언론관에 대한 초기의 대안적 언론활동의 출발은 맑스부터 찾을 수 있다. 맑스는 1856년 자본가가 몰락하고 현세에서 가난한자가 구원 받게 됨을 예언적으로 선언하면서 자본주의의 몰락과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사회주의를 제시한다. 그가 시사했던 모든 것에는 마치 구약성서와 같은 계시와 예언의 마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수동적 수용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능동적 수용자로 변신하는데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2. 맑스의 대안적 언론활동
맑스가 주장한,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계급이 물질상품의 생산 뿐아니라 정신적 생산수단까지 통제한다고 한 것은 결국 지배계급에 의해 착취당하던 당시 노동계급의 입장에서 보면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소외된 생활과 불안전하고 비인간화된 상태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던 자신들의 처지를 선언적으로 대변해 주었던 것이다.
사회주의는 이처럼 소외된 프로레타리아 계급에게 경제적 복지와 어느정도의 정치권력은 물론 그보다 더욱 중요한 성취감을 회복시켜 주며, 그에 따라 노동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의 존재의의를 되찾을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맑스는 언론이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맑스는 자본주의의 적들에게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언론을 적극 활용하게 된다.
맑스는 당시 독일을 지배하던 권위주의적 체제와의 투쟁을 위해 ‘자유로운 언론’의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사회를 이끄는 당의 번영을 위한 자유로서 강조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1858년 6월 29일자 ≪신 라인≫신문(Neue Rheinische Zeitung)의 편집인으로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자유로운 언론은 개인을 국가와 세계에 결합하는 결정적인 고리이다...자유로운 언론은…
대신해서 제시된 것들이기 때문에 당파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그의 눈에는 지금까지 역사가의 관점에서 활동한 초기의 모든 언론인들을 사상의 표피만을 다루어온 이데올로그로 보았다. 따라서 역사가들이 ‘객관적 실체’라고 부르는 경우에 그것은 지배계급의 권력유지에 필요한 이론적 무기를 제공해 주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독일 이데올로기(Die deutsche Ideologie)에서 이러한 유형의 객관성을 반동적인 것으로 규정하였다. 실제를 객관화 할 때마다 그것은 지배계급을 변호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객관성이라는 의미를 사용함으로써 실체를 은폐해 버리는 결과를 가져 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나 사회란 오로지 자신의 실천적 행동을 통해서만 참된 신념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말이 참된 것이 되려면 그것은 실천 가능한 것이 되어야만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그것은 참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즉, 진실이 아닌 것은 바로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맑스의 언론에 대한 역할관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는 자본주의를 타파하고 인간의 참된 주체성을 회복하며 언어와 행동을 일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언론이 중요한 임무를 완수하여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의 전파자, 즉 지배계급의 권력유지 수단으로 비판한 언론을 자신의 이데올로기 실천을 위한 중요한 도구로 인식하고 어쩔수 없이 이를 활용하려 했던 것이다.
신문은 그에게 있어서 노동자를 기만하고 있는 자본가들의 음모를 분쇄하고 노동자로 하여금 그들이 착취당하고 소외된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일깨우는 미디어로서 중요하고 결정적인 존재였다. 특히 언론인은 이때, 플로레타리아 계급으로 하여금 그들이 노예상태에 놓여 있는 하나의 인간상품이며, 소외된 존재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진정한 존재의의가 체계적으로 박탈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임무가 부여된다. 그리하여 언론인의 임무란 허위의식을 참의식으로 바꾸는 전위대 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