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담배 예절과 담배에 얽힌 이야기
1. 우리나라 담배 예절의 유래
우리 고유의 흡연예절은 지금으로부터 4백여년전 우리나라에 담배가 도입된 시점인 광해군시대부터 조선시대 유교생활 관습과 함께 양반사회는 물론 천민들 생활에까지 상하 생활예절로 정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최근 우리 생활주변에서 얘기되고 있는 웃어른 앞에서나 선,후배간에 맞담배 질은 안된다든가, 웃어른에게 담배 불을 청하여서는 안된다든가 하는것은 담배가 도입되었던 광해군 시절 임금 앞에서 신하는 담배를 피워서는 안된다는 궁궐예법이 서민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이러한 흡연예절은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고유 생활문화로서 오늘날에는 담배예절과 담배문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담배가 조선사회에 널리 퍼지기 시작하던 무렵에는 임금과 신하, 주인과 하인, 훈장과 서당아이들 등 남녀노소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서로 함께 피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 남초가 약초에서 기호품으로 대중화되면서 유교 논리가 사회 논리가 되고 또 철저한 신분사회였던 봉건국가 지배 계층인 양반 유학자들은 새로운 서양문물인 흡연행위에 일종의 규제와 예의규범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형과 아버지는 물론 연장자 앞에서 흡연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므로 피우지 말아야 하며, 양반 앞에서 평민은 담배를 피워선 안되며, 양반의 담뱃대 길이는 길어도 괜찮으나 평민이나 천민의 담뱃대 길이는 짧아야 하고, 여자가 남자 앞에서 흡연하는 것은 무례이므로 숨어서 피워야, 하고 담배를 피우면서 길을 걷다가 어른이나 연장자를 만나면 담뱃대를 얼른 허리뒤로 숨겨야 하고, 어른이 여자에게 담배를 피우냐고 물으면 설사 흡연을 한다해도 안피운다고 대답하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담배는 예로부터 나눔의 문화였습니다. `인심이 후하기로 담배만 한 것이 없었다`할 정도로 정을 나누는데 넉넉함…
2. 신분과 윤리 규범의 강화에 따른 흡연 문화의 형성
3. 산소에서의 금연
4. "말 듣지 않는 하인은 불이 잘 꺼지는 담배 같다."
이 높아지면 담뱃대의 길이도 자연 길어졌다. 민씨의 세력이 당당하던 때에 민판서 대감에 얽힌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어느날 민대감은 상노 아이를 하나 데리고 조상의 묘를 찾았다. 이 상노아이는 신분이 높은 민대감이 담배를 피울때 담뱃대에 불을 피우기 위해 데리고 다니는 심부름 하는 아이였다. 간단한 성묘를 올리기 위한 것이라 음식을 마련하지 않은채 그저 상노아이 하나만을 데리고 산소에 오른 민대감은 조상에게 절을 올리고 담배를 한대 피울 요량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얘 상노야 가서 담배를 한대 피워 오너라` 담뱃대를 상노아이에게 민대감은 건냈다. 상노아이는 민대감의 명을 받아 담배에 불을 붙이기 위해 산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불을 붙여 산으로 기어 올라왔다.
그런데 먼거리를 왔다 갔다 하니 담뱃대에 붙여진 연초는 금새 타고 말았다. 민대감은 노하여 "네이놈 담배에 불을 붙여 오라고 하니까 연초를 다 태워 오느냐!"며 상노아이를 나무라고 그자리에서 부싯게와 돌을 이용하여 담배를 피워 올리게 했다. 그러자 상노아이가 한마디 했는데 "대감! 산소 앞에서 담배를 피우시면 조상님과 서로 맞담배를 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민대감은 평소 아랫사람에게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된다고 일렀기에 상노아이의 말에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산소앞에서 담배를 피우면 그것도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라 생각하는 상노아이의 말에 민대감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4. "말 듣지 않는 하인은 불이 잘 꺼지는 담배 같다."
옛 조상들은 최고의 담배를 불이 잘가는 것이라 여겼다. 담배잎은 말릴 때 비에 젖은 담배는 불이 안 간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지금과 같이 성냥이 없고 화승불이나 부싯돌을 쳐서 불을 일으키는 까닭에 담배 한대를 피우는데도 여러번의 부시를 쳐야하는 수고로움을 면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조 영조때 김상로(金相魯)라는 양반이 있었는데 성질이 매우 급했다고 합니다. 대개의 경우 좋은 담배는 한번 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