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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의 독자성과 생산력
1. 기록과 이야기
초기 기록영화는 적어도 1900년대 초반 까지는 초기 이야기 영화에 비해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것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주류 오락영화의 지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초기 기록영화가 영화 관객에게 호소력을 가졌던 이유는 물론 현실의 재현 능력 때문이다.
초기 기록영화의 주요한 두 범주는 시사 영화(visual newspaper)와 이국적 풍경을 다루는 영화(topical)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 공간의 뉴스거리와 접해보지 못한 곳의 신기한 풍습과 경치를 생생히 보여주는 것은 당시 영화만이 보유했던 능력이었다. 이것은 <삶의 자연스러움을 목격하는 놀라움>과 동시에 <나르시즘적 호기심>을 자극했으며 때론 <현실을 마술적인 대상으로 바꾸는 능력>이기도 했다. 초기 기록영화의 호소력은 곧 영화라는 매체 자체의 놀라움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러나 초기 기록영화의 호소력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영화의 중심은 이야기 영화의 차지가 된 것이다. 과연 이 전환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초기 영화의 중심 영역이 이야기 영화로 바뀌는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1900년대에 들어가면서 이미 이야기 영화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견해도 있고 길게는 1910년 까지 초기 기록영화가 오락의 기능을 수행한 영화였다고 보기도 한다. 그 시기는 대략 1900년대 초반에서 후반 사이라고 보면 무방하다. 이 시기 초기 기록영화가 주변적인 지위로 밀려난 이유에 대해 연구자들은 우선 초기 기록영화 자체의 호소력이 감소되었다는 견해를 보인다.
“초기 기록영화의 상업적인 성공이 비슷한 유형의 영화들을 양산한 반면 극영화 쪽은 기술적인 혁신(편집)을 통해 발전을 도모했으며..., 다음으로 상류층의 지원과 식민지 정책을 미화하는 방…
바삼 역시 에릭 바누와 동일한 견해를 밝히며 초기 기록영화의 지나친 재연의 경향을 상업적인 강박관념의 소산으로 본다.
구는, 그 요구를 촉발하는 사회 경제적인 동인을 따로 가지고 있다.
쥬디스 메인은 이야기 영화의 발전이, 쇼트의 증가와 편집의 <발견>과 같은 계기로 인한 단선적인 연쇄의 과정임을 부인한다. 메인은 대신 스타일을 포함하여, 관람행위, 영화의 문화적 의미, 관객의 계급 등 다양한 계기들이 모인 결과가 이야기 영화의 발전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메인의 요소 중 하나는 중산계급을 확보하려는 보드빌 경영주의 노력이다. 초기 영화가 주로 노동자 관객을 대상으로 했지만 사회적인 평판을 얻기위해 보드빌 경영주는 영화를 중산층에 호소력이 있는 예술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메인에 의하면 그것은 고전 작가들의 소설을 영화의 토대로 삼는 노력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야기 영화의 서사 구조를 발전시킨 요인의 하나로 간주된다.
보드빌과 관련해 또 하나 주목할 사항은 상영/배급 체계이다. 보드빌에서 영화가 활발히 상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영화사의 정기적인 작품공급과 보드빌에 대한 지원에 있었다. 영화사는 필름과 상영도구, 기사 일체를 보드빌에 대여하며 한 달 간격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공했으며 또한 관객의 반응을 조사해 제작에 반영했다. 그러나 이런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필름을 구입한 보드빌은 낡은 영화를 계속 반복하여 상영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초기 기록영화에 대해 관객들은 식상함을 느꼈을 것이라고 알렌은 주장한다. 또 단기간의 교체가 가능했던 보드빌이나 제작사 측에서도 초기 기록영화는 위험부담이 많은 상품이 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다루는 소재에 따라 관객의 반응이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좀 더 흥미있고 자극적인 소재를 찾아야 한다는 부담이 가해졌다. 따라서 외적인 사안에 매이지 않고 안정된 관객과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이야기 영화로의 집중은 자연스런 결과라 하겠다. 결국, 초기 기록영화의 세력이 축소되는 이유를 초기 기록영화 자체의 결함이나, 극영화의 <발전>에 의한 일방적인 축출로 이해하는 것은 단편적인 견해이다. 그것은 경제적, 사회적 요인으로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