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남한의 사회주의 운동(NL, ND, PD)의 형성과 특징 검토
1. 1988년 초까지 : NL, ND의 정립
남한 사회에서 혁명운동의 복원은 80년 광주무장봉기의 경험에 의해서 이뤄졌다. 그리고 혁명운동의 역사적 복원과 함께 6, 70년대 자유주의자의 품안에서 또는 그들과 구별정립해 있지 못하던 미분화된 혁명적 민주주의자들이 독자적인 깃발을 들고 남한 사회의 변혁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80년대 중반 C/N/P 논쟁은 이러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운동과 혁명적 민주주의운동을 구별정립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 과정은 또한 혁명의 주도세력으로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인식을 획득하는 시기였으며 혁명적 민주주의자들이 노동자운동에 대거 뛰어들게 한 동력이 되었다. ??성격과 임무??는 바로 이런 시기에 쓰여졌다. 이로써 80년대 들어 민주주의자의 시각에서 혁명적 민주주의운동의 정치?조직 노선을 담은 조야한 팜플렛 시대를 마감하고 본격적으로 사회주의혁명을 목표로 한 남한 사회에 대한 전면적 분석을 시도하여 그 성격으로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규정을 획득하였다. 남한 사회 혁명론으로서 제기된 민족민주혁명론은 그 때와서야 완결적인 모습을 갖추었다. 이와 함께 남한 혁명적 민주주의진영은 사회구성체 논쟁을 매개로 한 혁명론 정립논쟁을 전개하면서 이론에 입각한 혁명운동을 정립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은 그 이후 노동자계급 운동 속에 남한사회 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당면 혁명의 성격으로서 민주주의 혁명의 의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주는 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사회주의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하지만 이 당시 ??성격과 임무??에서 제기된 남한 사회혁명의 최대강령으로서의 사회주의혁명에 대한 인식은 대단히 거칠었다. 그 당시 제대로 된 맑스주의자, 사회주의자는…
2. 1991년중반까지 : NL, PD, ND의 정립
투쟁으로 6.29선언이 강제되고 남한 사회계급투쟁의 새로운 조건이 전개되면서 혁명적 민주주의 진영 내부에서 혁명적 경향과 개량주의적 경향 사이에 대립이 시작되면서부터이다. 이러한 대립은 87년 대선에서 김대중 비판적 지지파와 민중후보 진영의 분열, 민중후보 진영내 민연정과 민중권력 수립론의 대립, 6.29체제에 대한 인식에서의 대립(부르주아민주주의로의 이행이냐 파시즘의 연장이냐)으로 나타났으며 노동자조직 내의 분열로 나타났다. 이 분열은 전술적인 대립으로 나타났으나 그 전개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의 해방의 과제를 전면에 등장시키고 그에 입각하여 실천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지 못해온 데 대한 자각이 싹트면서 혁명적 민주주의운동으로부터 껍집을 깨고 사회주의운동의 정립을 이루는 데로 나아가게 되었다.
노해동 소수파가 88년 총선전술을 평가하면서 민중후보 전술의 실패의 한 요인으로 노동자후보 전술로까지 나아가지 못했다고 평가한 것으로 징검다리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당시의 사회주의적 활동은 하나의 단초에 불과한 것이었다. 본격적인 사회주의운동의 전개를 위해서는 조직의 정립과 사회주의자로서의 자기탄생 및 훈련의 과정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노해동의 소수파와 다수파로의 분리에서 시작되어 사회주의노동자동맹 준비위의 출발, 인노련의 분열과 인민노련의 성립 및 노동자의 길 성격전환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1989년 11월 남한에는 자신의 이름에 사회주의를 새겨넣은 남한 사회주의노동자동맹이 출범한 것이다. 이 1~2년의 과정은 노동운동 내 맑스주의 및 맑스주의운동에 대한 학습이 열풍처럼 전개되고 그로써 사회주의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이뤄지는 과정이었다. 인노련 내에서 진행된 원전학습, 사노맹준비위의 지옥훈련은 남한 사회에서 사회주의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위한 원시적 축적의 과정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시기 사회주의 활동의 특징을 도식화하면 선전에서의 사회주의적 활동, 선동에서의 혁명적 민주주의 활동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