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국가주도의 경제개발 전략과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한국 경제 흐름
1.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확립 (1973~1981)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기간 중 한국경제는 1973년에 16.7%라는 유례 없는 성장을 그 정점으로 하여 계획목표 연평균 성장률 8.6%를 크게 상회하는 연평균 11.2%의 고성장을 기록하였다. 이런 경제규모의 양적 확대와 더불어 질적인 부분의 개편도 이루어져 산업구조가 더욱 고도화되었다. 예를 들면 농림어업의 현저한 감소에 비해 광공업의 비중이 현저하게 높아짐으로써 우리 경제의 산업구조가 1차산업 중심이었던 후진형 구조를 탈피하여 선진형 구조로 이행하는 이른바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이룩하였다.
3차계획기간 중의 고도성장을 주도한 제조업부문은 부가가치생산에 있어서 1971년의 6,590억 원에서 1976년에는 16,670억 원으로 약 2.5배로 증가되었으며 GN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동 기간 중 21.7%에서 35.0%로 제고되어 계획목표를 7.5%나 초과하였는데, 이것은 철강, 전자, 조선, 석유화학콤비나트 등 중화학 공업의 중점적인 건설에 힘입은 바가 컸다.
70년대의 중요한 사건은 8.3조치(1972)와 중화학공업화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배경과 내용을 보면 우선 8.3조치는 60년대 말에 이르러 차관경제의 부작용으로 나타난 인플레이션 고질화, 긴축재정으로 오히려 가속화된 불황, 환율인상 조치에 따른 수입자본재가격상승으로 인한 국제수지 악화의 상황 가운데 기업의 부실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 1972년 8월 3일에 경제안정성장을 위한 긴급명령 제 15호로 공포되어 실행된 것으로서 그 내용은 사채동결, 금리인하, 조세감면, 특별금융채권발행(산업합리화 자금을 형성하여 저금리, 장기로 부실기업에게 제공)이었다.
2 중화학공업화선언 (1973)
1) 선언의 배경
1. 달러체제의 붕괴(60년대 말)
독일을 중…
3. 1980년대의 한국 경제 (1982~1991)
, 비료. 합성수지. 자동차 등의 수입대체산업이 생겼지만 완전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노동집약적 중화학공업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기술면에서는 선진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중화학공업화는 산업간 연관효과의 저조로 국내산업간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선진국에 대한 기술적 분야의 종속심화로 국민경제를 종속시켰으며 많은 수입유발을 가져왔다. 또한 독점재벌의 비대화를 촉진시켰다.
제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기간에서 총량경제실적 중 우선 성장면을 보면 계획기간 동안 연평균 5.8%의 실질성장을 기록함으로써 계획목표인 9.2%에는 훨씬 못미쳤다.계획기간중 각 연도별로 보면 1977년, 1978년은 각각 10.3%, 11.6%로 계획목표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1979년 이후 과열경기에 뒤따른 극심한 불화으로 1979년 6.4%, 1980년 -6.2%, 1981년 7.1%로 목표에 못미쳤었다.
무역 및 국제수지면에서도 역시 원래 계획과는 크게 벗어난 모습을 보였다. 이 기간 동안 총수출은 연평균 13.7%, 총수입은 연평균 13.9% 증가하였다. 따라서 목표년도인 1981년 수출. 수입은 각각 208억9천만 달러, 238억7천만 달러에 달하였다. 이처럼 무역적자의 폭이 확대됨에 따라 1981년 11억7천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였다. 1979년 2차 석유파동의 발생, 국제인플레이션 심화로 인해 에너지 多소비형 중화학공업이 주를 이루던 한국경제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이런 해외요인이외에 국내적인 요인도 지적할 수 있는데 과도한 중화학투자에서 비롯된 해외자본재에 대한 막대한 수요, 국내인플레 등 및 경공업기술 개선부진에 따른 수출경쟁력의 약화에 기인한 바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80년도 GDP는 마이너스 4%성장을 하게 된다. 1980년대에 오면서 그 동안 누적외채로 인한 외채문제가 대두되면서 한국은 자금선의 다양화 등의 자본자유화로 개방정책을 펴게 된다.
3. 1980년대의 한국 경제 (1982~1991)
1980년대의 사회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