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공자 사상이 현대 사회에 주는 함의(含意)
1. 들어가며
우리는 현재에도 보이지 않는 사회 윤리와 가치관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것에 의해 행동이나 사고에 제약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사회 윤리와 가치관 역시 인간 활동의 문화적 소산이며 유산이다. 따라서 현대 사회에 맞는 새로운 윤리 확립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를 규정하고 제약하는 인간관계와 윤리는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을까?
인류가 발생하여 공동생활을 하면서부터 인간관계에 대한 규칙이 생겼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을 세련된 형태로 집대성하고 그 가장 핵심적인 것을 다듬어 낸 것은 지금보다 2500년 전에 살았던 공자가 아니었을까 한다. 따라서, 오늘날까지도 공자에 대한 수많은 專論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 수많은 전론들이 바라보는 공자 상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공자 사상은 봉건사상의 총화이며 극단적 보수 반동의 이데올로기라는 의견에서부터 가장 극단적이고 현실적인 혁명가라는 의견까지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더구나 공자의 그것은 박물관에 모셔 놓고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데 그치는 선조의 유물(heritage)이 아니라 오늘 이 순간에도 우리의 곁에서 숨쉬고 있으며 우리의 행동에 끊임없이 영향을 끼치는 가장 현재적인 것이기에 그 논쟁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그러나 공자 자신은 저서를 남긴 일이 없을 뿐더러 공자 사후 각종 공자 설화의 발전과 중국 사회의 변화에 따른 왜곡이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이 공자 사상에 대한 논쟁은 그 정답을 가리기 힘들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공자 사상에 현대적 가치를 부여할 만한 요소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그런 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청산해야 할 전근대적인 사고 …
2. 공자 사상이 현대 사회에 주는 함의
보다 禮를 아끼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을 보아 공자는 되도록 古來의 내려져 오는 禮를 지키길 원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그가 완고한 전통주의자라는 것은 아니다. 논어의 八佾편에는 禮는 형식을 갖추기보다는 그것을 행하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는 공자의 말이 남아 있기도 하다.
그러나, 공자는 무엇보다 禮를 중시했으며 그 실천에 노력했다. 공자에게 있어 禮는 주의 전통문화의 전형적인 표징일 뿐 아니라 동시에 문화의 전형적인 표징일 뿐 아니라 동시에 그것은 사람이 마땅히 따라야 할 道義를 반영한 것, 즉 사람의 올바른 행위의 형식을 규정하는 도덕적 규범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를테면 禮는 고전적 지식에 속하는 사항인 동시에 일상의 행위를 규제하는 규범이기도 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은 덕행의 중요한 요소를 이루는 것이었다. 또, 정치상의 여러 제도나 그 운영 방식, 공공의 행사 등을 진행하는 관례이기도 하므로, 정치에 종사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그에 정통해야 했다. 따라서 공자는 禮를 익힌 사람을 `군자`라고 불렀고 禮는 곧 군자의 교양이었다.
군자란 곧 君,임금을 뜻하는 말과 子, 아들. 친족이라는 말이 합쳐진 것으로서 높은 신분을 가지고 백성을 다스리는 왕족이나 귀족을 가리켰다. 공자가 이 군자라는 칭호를 왕족이나 귀족과는 상관없이 禮를 익힌 사람에게 사용했다는 것은 당시로선 혁명적인 의미가 담긴 것이었다. 듣기에 따라선 지배계급을 뒤엎고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려는 의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문인들에게 군자가 되라고 가르치면서 여러 가지 덕목을 제시하였다. 덕목이란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의 중요한 항목을 열거한 것으로서, 사람들의 수양의 지표가 되는 것이다. 공자가 말한 주요한 덕목은 仁.恕.忠.信.孝.弟 등인데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仁이다. 仁에 관해서 공자가 언급한 말은 수없이 많다.
"군자가 인을 버리면 군자로서의 이름을 어찌 지키겠느냐. 군자는 밥 먹는 동안일지라도 인을 어김이 없으니, 다급한 때라 할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