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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적 리더쉽의 소유자 박정희(朴正熙)
1. 도 입
박정희에 대한 현재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그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대통령의 치적을 보면 ■ 경부고속도로 건설 ■ 새마을 운동 실시 ■ 포항종합제철소 건립 ■ 수출 100억불 달성 ■ 소양강 다목적댐 건설 ■ KAIST 설립 ■ 자주국방을 위한 미사일, 핵무기 개발시도 등이 있다. 경제분야에서 이룩한 일련의 업적과 관련하여 우리 나라를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의 위치까지 이르게 하였으며,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주국방의 길을 열기 위한 노력했던 모습에서 민족주의자로서의 박정희의 리더쉽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점에 대해 박정희의 독재적 리더쉽에 대한 비판의 의견도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현재 노무현 정권의 리더쉽 부재와 관련하여 지난 60~70년대의 박정희 정권을 통해 박정희의 지도자로써의 리더쉽에 대해 고찰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2. 박정희의 리더쉽에 관한 사례
1) 철저한 친인척 관리
그동안 우리나라 역대정권은 친인척의 부정부패로 인해 정권에 불명예스런 오점을 남긴 경우가 많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친인척을 엄격히 관리해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을 중시하였다. 제가(齊家)에 실패한 대통령이 치국(治國)이나 평천하(平天下)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은 이권으로부터 친인척을 떼어놓는 데에 무척 엄격했다. 아무리 가까워도 예외가 없었다.
?제조업을 하는 박대통령 누이의 아들이 어머니를 통해 쉽게 대출받으려 한다는 정보가 청와대에 보고된 적이 있다. 그 누이는 어머니 대신 朴대통령을 업어 키운 무척 가까운 혈육이었고 아들은 이를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이런 대출청탁이 바로 청와대에 보고된 것은 이권개입을 감시하는 제도 덕분이었다. 朴대통령 누님같은 청탁건이 또 있겠다 싶어 조치를 취했다.
?1973…
2) 주변인을 압도하는 인간 박정희
읽기 시작하였고 총성으로 중단되었던 귀절 바로 뒷문장을 정확히 짚어내 읽어갔다. 퇴장할 때 박대통령은 육여사의 고무신과 핸드백을 자신이 직접 주워 갖고 나오다가 경호원에게 넘겼다. 그리고 박대통령은 독립유공자들을 위로하는 리셉션장에 들러 공식행사를 끝낸 뒤 서울대 병원으로 갔다.
박대통령은 그 위기의 순간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대담하면서도 세심하게 처신하였다. 공인과 사인의 갈림길에서 보여준 박대통령의 이 같은 태도는 너무나 인상적이었으며 보는 이에 따라 가슴을 아프게 했다. 박대통령을 평하기를 「청탁을 같이 들이마시는 사람」「작게 치면 작게, 크게치면 크게 울리는 큰북 같은 분」이라고 한 말이 있었다. 박대통령은 담대해야 할 때는 무섭게 담대하였고, 자상해야 할 때는 자상했으며, 슬플 때는 누구보다 눈물이 많았던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 그의 주변인들은 박대통령이 당황하거나 서둘고 허둥대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박대통령은 늘 정리하고 계획하며 대비하는 사람이었다. 박영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일할 때였다. 박대통령이 동남아 순방에 나서기 하루전인데 갑자기 박비서관을 부르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박대통령은 『내가 깜박 잊고 갈 뻔했다.』면서 민정반 활동비를 건네주었다고 한다. 『출국을 하루 앞둔 시기에 그렇게 사소한 데까지 신경을 쓰는 데 질려버렸다』고 박영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회고했다.
?박대통령은 늘 긴장된 자세를 유지하고 집무에 임했다고 한다. 집무실에서는 소파에 거의 앉지 않고 회의용 의자에 꼿꼿이 앉아 일을 보았다. 이 의자는 L자로 딱딱하게 생긴 것이었다. 박대통령은 집무실에서는 물론 차중에서도 낮잠을 자거나 졸지 않았다. 항상 정신을 칼날처럼 곧추세우고 있었거나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고 한다.
?박대통령은 또 사람을 긴장시키기도 하고 감동시키기도 하며 그사람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요령을 터득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사례로 박대통령이 무역 진흥확대회의에 참석한 기업 대표들과 인사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