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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의 성리학에 대해서
중국 중세에는 불교와 도교가 힘을 얻고 유교는 쇠락하였다. 송대에 이르러 유학자들은 전통 유교윤리에 보다 나은 기초를 부여함으로써 불교와 도교의 도전에 대응하였다. 송나라 때 일어난 신유학은 신유학자들 간의 논쟁, 지적 삶속에서 문학 창작과 문헌 연구, 왕안석의 신법에 대한 대안추구 등과 같은 것들로 흥기를 설명할 수 있다. 송나라 때 생기거나 발전된 많은 사상들 중 신유학은 학문으로써, 정치적으로써, 사회 전반적으로 당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먼저, 신유학을 창건한 사상가들은 진정한 가치들은 자연 자체에 기초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자연이란 천지가 생명을 일으켜 내는 과정이다. 이러한 주장은 과거의 학자들 또는 고문古文가로부터 분리시켜주었다. 그들은 고대, 성왕, 경전에 대한 해석에서 그 가치들의 기초를 찾았다. 신유학자들은 당대의 다른 학자들 및 예전의 유학자들과 스스로를 구별하기 위하여 학문에 대한 자신들의 이론을 사용하였다. 그들이 학문에 대한 이론을 밝히는 길은 그것을 추상화하는 길이기도 했다. 우주가 작동하는 방식 고대문명의 기원 등에 대하여 주장을 펼치면서 신유학자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형이상적인 사안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했다.
전통적으로 모든 것은 기氣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정설로 받아들여져 왔다. 기는 음과 양이라는 두 가지 종류에 의해 이해된다. 예를 들어 자연의 낮(양)과 밤(음)의 순환이 있다. 그리고 기는 비슷한 기의 것들은 서로 공명한다는 전제에 기초해 있었다. 그래서 해당 연도의 순환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음식, 장소 등을 바꾸고 그렇지 않으면 자연의 진행을 방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과거의 학자들은 어떤 합당한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기 사상을 활용했다.
그러나 신유학자들은 그런 것 대신 기氣 자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개념에 기초해 기 사상을 발…
다. 그래서 신유학자들이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공헌을 하지 않았다고 당대에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주희는 자신의 의제에 대한 통치자의 후원을 얻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조정을 지해하던 정치가들이 주희를 좌절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노력으로 볼 때, 주희를 비롯한 신유학자들은 정부의 정책 및 관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자 노력했으며 자신들의 주장을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싶어 했다는 것이 분명하다.
신유학자들은 도덕과 정치는 구분될 수 있다고 봤고, 정치에 대한 권위는 학學을 올바르게 수행한 이들에게 속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학學이란 어떤 모델을 내면화 하는 과정이다 앞서 기氣를 설명할 때 내면화하는 단련을 학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논어의 첫 구절인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에서 학을 유추할 수 있다.따라서 정부가 올바른 체제를 갖춘다 하더라도 진장한 학이 실천되지 않는 한 세상은 도덕화 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정치와 도덕의 통일을 말한다.
주희는 한나라 당나라 때의 전기제국의 통치자들은 다스리기는 하되 학을 실천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였다고 주장했다. 고대의 성왕들을 올바른 학을 구현하여 그에 따라 나라를 다스린 반면 후대의 황제들은 힘을 통해 통치하고 동기가 이기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는 권력의 힘을 빌려 사람들에게 도덕을 가르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신유학자들의 통치의 기준은 도덕적 양심에 의한 통치 실행의 여부이다. 주희는 바른 마음을 가진 통치자는 도덕적 원리에 의해 이도될 것이며, 자기 이해에 의해 이기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이며 공적이 논의를 억압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주희는 악한 통치자는 전복시킬 수 있다고 본 점에서 맹자의 역성혁명사상의 입장을 지지했다. 그는 통치자도 다른 인간들과 같은 도덕적 지적 잠재력을 가진 존재이며, 마찬가지로 타락에 노출된 인간이라고 말했다. 통치자도 다른 인간들과 같이 마음 본연의 천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천리는 그를 공정함으로 인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