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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1. 프롤로그
비디오 아트는 20세기 중반 대표적 서구 문물의 하나인 TV를 예술에 끌어들인 후 탄생한 미술양식이다. 현대문명의 산물인 TV가 없었다면 ‘비디오 아트’가 탄생하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여기에 백남준이라는 천재성을 가진 예술가가 자신의 탁월한 상상력과 예술적 이상을 투입하지 않았다면 비디오아트는 탄생하지 못했다. 비디오 아트는 텔레비전 수상기나 컴퓨터 모니터 등을 가지고 조각, 설치, 환경 등을 제작한 1960년대 새로운 양식의 예술이다. 비디오 아트는 예술이라는 한정된 영역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감각과 인지능력을 확장했다. 이제 비디오 아트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커뮤니케이션, 즉 인공위성을 예술적인 목적과 통합시켜 예술혁신을 가능케 했다. 백남준은 현대미술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비디오 아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대한민국출신의 예술가다. 비디오 아트를 창시했을 뿐 아니라 지난 2006년 세상을 뜰 때까지 비디오 아트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 온 것으로 미술계에서 평가받아오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피가 흐르는 모양이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친근한 명화에 애니메이션 기법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영상이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를 개척해가며, 두바이 국제 아트페어, 스미소니언 미술관 개관 초대전, 아시아의 새로운 물결전 등 유명 전시회를 통해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기 시작한 세계적인 미디어 아트 작가 ‘이이남’ 또한 백남준의 해학을 이어받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유머와 풍자를 섞어, 미술에 대한 기존 관념 뒤집기를 과감히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2. 비디오 아트 창시자 백남준
백남준은 경기고등학교 전신인 경기공립중학교에 재학하던 시절에 음악교사인 신재덕 선생으로부터 피아노 뿐 아니라 작곡과 성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음악수업을 받았다. 그 때…
적 색채가 강한 소재를 취해 작업하면서 때론 현대인간 스스로를, 때론 현대문명 스스로를, 때론 현대미술 스스로를 반성하고 가다듬는 시간을 가졌다. 동양정신과 사상이 인류의 구원이자 희망으로 떠오르는 시점에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동양성을 담보해 현대미술의 방향은 물론 인류의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제시했다.
백남준은 60년대 예술의 흐름인 예술과 관객 사이를 좁히고 관객이 예술 작업에 참여함으로써 의외성을 수반하는 다양한 퍼포먼스와 함께 플럭서스1) 멤버로 활동하면서 비디오 예술장르를 개척한 예술가이다. 평면 회화의 전통에 산업사회의 산물인 비디오를 화폭으로 끌어들이고, 관람자의 청각적인 요소에 시각적인 요소를 콜라주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매체로 확장함으로써 현대미술의 한 획을 그은 작가이다. 백남준의 이러한 시도는 조작造作적인 도구로 비판의 대상이 돼온 텔레비전을 이용해 예술작업에 임했고, “예술가들은 오늘날 붓과 바이올린과 폐품들로 작업하듯이 언젠가는 축전지와 저항기, 반도체로 작업을 할 것”2)이라고 30년 전에 예언하면서 비디오 아트가 설치와 조각에서 방송으로까지 영역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했다. 백남준은 보편적인 사물을 통해 자연만물의 변화와 그 근원적 생명력을 시적으로 표현하려 노력하였으며, 여러 다양한 퍼포먼스 작업도 하였다. ?머리를 위한 선禪, Zen for Head, (1962)?에서는 동양적이고 개념적인 사상이 나타나는 퍼포먼스를 하게 된다. 백남준의 퍼포먼스는 늘 사람들이 이목을 끈다. 백남준의 해프닝은 플럭서스에서 좀 더 체계화되고, 공연을 거듭하는 가운데 양식화되었다. 거칠고 선동적인 경향은 줄어들었고 플럭서스는 그에게 무엇보다도 비디오아트를 산출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백남준은 샬롯 무어맨과의 퍼포먼스로 외설시비에 휘말리게 되면서도 여러 차례 함께 퍼포먼스를 하였고 그 이외에도 로봇을 제작, 전시하고 그 로봇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퍼포먼스도 하게 된다. 이러한 상업성이 없는 작업에도 불구하고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