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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14세의 영토 확장과 전쟁>
루이 14세(Louis XIV, 1638.9.5~1715.9.1)는 중상주의를 통한 경제 발전, 관료제 정비를 통한 귀족 계급 통제와 국내 지배 말고도 영토 확장을 통한 자신의 대내외적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였다. 영토 확장을 위해 루이 14세는 대대적인 군비 확장 작업에 들어갔는데 발루아 왕가(Maison cap?tienne de Valois)1)때 1만에 불과했던 상비군을 1635년 30년 전쟁 때는 14만 2천명, 1672년 네덜란드 전쟁 때는 25만, 1688년 아우구스부르크(Augsburg) 동맹 전쟁기간에는 40만,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기간에는 65만 명까지 대폭 증강했다.2)
물론 이러한 폭발적인 군사력 증강에는 막대한 재정이 필요했고, 대부분의 국가 재정 수입이 전부 군비 확장 및 유지를 위해 소모되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구조는 군대내의 고위직을 차지한 귀족들과 이들과 결탁한 특정 상인들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하였다.3)
1. 귀속전쟁(War of Devolution, 1667~68)
귀속전쟁은 루이 14세가 피레네 조약(Treaty of the Pyrenees)4)의 일환으로 스페인의 왕 펠리페 4세(King Felipe IV of Spain, 1605.4.8~1665.9.17)5)의 딸 마리 테레즈(Marie-Th?r?se, 1638.9.10~1683.7.30)6)와 결혼하였는데 마리 테레즈의 지참금을 펠리페 4세가 죽은 이후까지 지급되지 않았다는 것7)이 발단이 되어 일어난 전쟁이다. 펠리페 4세가 죽은 이후 루이 14세는 현재의 벨기에 지방에 해당하는 스페인령 네덜란드를 지참금으로 받겠다…
2. 네덜란드 전쟁(The Dutch War, 1672~78)
3. 아우구스부르크 동맹 전쟁(War of the League of Augsburg, 1688~97)
4.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The War of the Spanish Succession, 1701~14)
684년에는 룩셈부르크(Luxembourg)까지 장악하게 된다. 프랑스의 팽창주의를 두려워 한 유럽의 다른 국가들은 세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동맹을 맺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아우구스부르크 동맹15) 또는 대동맹(Grand Alliance)라고 불리는 반프랑스 연합체제다. 루이 14세는 오라녜 공 윌리엄이 자신의 장인인 제임스 2세(James II, 1633~1701)16)를 격퇴시키기 위해 대륙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관심을 돌릴 수 없으리라 판단을 하고 1688년 9월에 팔츠(Pfalz)를 공격하고, 하이델베르크(Heidelberg)를 불태우고, 라인 강 중류 지방에서 잔혹 행위를 펼치게 된다. 그러나 루이 14세의 예상과는 다르게 윌리엄은 제임스 2세를 몰아내고 유럽 대륙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되고, 이에 잉글랜드와 에스파냐가 동맹에 참여하여 프랑스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1694년까지 루이 14세는 이렇게 불어난 동맹과도 싸우는 한편, 대내적으로 불어 닥친 기근으로 인해 심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결국 프랑스와 아우구스부르크 동맹 양 측은 라이스바이크(Ryswick) 조약17)을 맺고 전쟁을 끝마친다.
4.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The War of the Spanish Succession, 1701~14)
라이스바이크 조약이 체결되어 유럽의 평화가 정착되는 듯 했지만, 이번에는 에스파냐 왕실에서 문제가 나타났다. 카를로스 2세(Carlos II, 1661.11.6~1700.11.1)18)가 노쇠함과 질병을 이기지 못하고 후계자를 남기지 못한 채 사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 유럽 대륙이 카를로스 2세의 후계자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었는데, 특히 루이 14세와 레오폴트 1세가 특히 관심을 보였다.19) 그러자 잉글랜드의 오라녜 공 윌리엄은 에스파냐 합스부르크 왕가의 제일 큰 영토를 당시 6세에 불과했던 바이에른(Bayern) 공 요제프 페르디난트(Joseph Ferdinand, 1692.10.28~169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