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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과 생산성
이제 수많은 나라들 사이의 소통과 경쟁이 개개인의 삶에 직결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시대상황에서 무엇보다 절실한 과제로 국민 의식의 세계화?선진화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세계와 교섭하고 겨루기 위해서 필요한 기술과 산업 및 경제의 역량은 모두가 국민들 개개인의 의식과 일상적 행동을 통해 구현되는 것이다.
현대 경쟁사회에서 첨단과학과 기술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그것을 만들고 운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이다. 의식이 바르게 서지 않고는 행동의 효율성이 산출되지 않으며, 의식의 선진화가 없는 한 그 나라는 세계 일류의 국가로 도약하지 못한다.
지난 몇 년간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과 사고들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 의식수준 속에 깃들어 있는 문제점의 필연적 표현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 사건과 사고의 대부분은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였으며, 어쩌다 생긴 우연이 아니라 ‘예고된 필연’이었던 것이다.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책임 소재를 놓고 한동안 시비가 분분하지만, 그 근본 원인은 ‘대충대충’과 ‘빨리빨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우리의 전근대적인 의식 때문인 것이다.
우리의 주변에는 내일과 내년을 생각하기보다 지금 당장 눈앞에서의 임시변통과 겉모양에만 매달리는 현상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개인과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이런 행동 양식이 기업, 사회단체와 공공기관에까지 만연하여 우리의 삶은 뒤가 허전하고, 우리의 제도와 물건은 내구성이 부족하다.
인간관계에서도 친밀함과 무례함의 경계가 쉽게 허물어지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낯선 사람끼리는 제법 예의를 차리고 사리분별을 제대로 따지다가도 조금 친밀해지면 그 규범이 간데없이 사라지는 것이 우리 사회의 통례다. 친밀함이 예의로써 절…
그런 뜻에서 도덕성 함양이란, 사람다운 삶을 위한 기본 원리의 요구인 동시에, 더 높은 수준의 국가 발전을 성취하기 위한 필수적 과제인 것이다.
여기서 유교적 규범으로서의 예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자. 유교에서는 예를,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 또는 남을 공경하는 마음(恭敬之心)이라 했다. 남 앞에서는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여 주는 것이 곧 예의 원초적 심성이라는 것이다. 내가 나를 낮추는 겸손으로써 남을 높이면, 상대방 또한 스스로를 낮추고 나를 높여 주게 되는 것이니, 결과적으로 너와 내가 함께 존중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예를 ‘예속(禮俗)’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보아 그것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풍속과 어울려 가변적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오랜 세월 독자적인 생활문화를 영위해 오는 동안 우리 나름의 예절, 곧 예속 또한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우리는 원래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엄격히 예의를 지켜 왔다. 가령 부부처럼 가까운 사이에서도 예절을 엄격히 지킨 것을 들 수 있다.
여기에는 놀랄 만큼 깊은 생활의 지혜가 스며 있다. 즉 말과 행동 사이에 관계 지워지는 요체를 익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언행(言行)이라 하여 말과 행동이 같은 맥락에 있음을 인정한다. 부부간에 먼저 호칭을 비롯한 모든 언사를 정중하게 하면, 이것은 곧 행동을 서로 삼가는 예방 조치가 되니, 지속적인 화목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서로 벗을 하는 평교간에도 일단 관례(冠禮)를 치르고 나면 서로 이름조차 부르지 않고 자(字)나 아호(雅號)를 불렀으니 이 또한 세련된 예절 문화의 한 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훌륭한 우리의 전통 예절이 요즘에 이르러 혼란의 극치를 드러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불행했던 현대사에 그 원인이 있다.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이루 저들은 소위 ‘근대화’라는 미명 아래 우리의 전통 예절을 비롯한 일체의 민족문화를 송두리째 부정?말살하는 정책을 교묘히 폈다. 요즘 우리 사회의 이러한 실태는 모두 이러한 일제 식민지 시대의 잔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일제시대에도 비록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