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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보관운동과 우리나라 지역사회복지 비교
사회복지관 운동은 산업화 도시화 과정에서 인간의 가치를 보존하려는 여러 가지 시도중의 하나로 영국의 인보관운동(Settlement Movement)에서 역사적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이 운동은 1867년 기독교 사회주의자인 에드워드 데니슨(Edward Denison)목사에 의하여 처음 시도되었는데 영국 런던의 한 빈민지역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질병?범죄?무지?비위생적 환경?빈곤 등을 교육적, 문화적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성경을 가르치고 교육을 하며 상담을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이와 같은 이념은 그의 보조 목사로 일하던 캐논 바네트(Canon S. A. Barnett)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실천에 옮겨졌는데 점차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협조를 얻게 되어 저소득층 주민과 문화교육의 배경이 있는 사람들과의 접촉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줌으로서 그들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계층간의 격차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인보운동은 대학 사회에도 영향을 주어 옥스포드(Oxford)와 캠브릿지(Cambridge) 대학의 학생과 교수들도 참여하게 되었다. 그들은 빈민의 도덕적 감화와 교육을 목적으로 빈민굴에서 생활하며 활동하였으며 당시 인보운동에 헌신적으로 활약하다 요절한 토인비(A. Toynbee)를 기념하기 위하여 바네트(C. Barnett)의 주도하에 런던 동부 빈민지역인 화이트 채풀(White Chapel) 지구에 설립된 “토인비 홀(Toynbee Hall)”이 세게 최초의 사회복지관이다. 이 인보관은 교육과 개혁의 중심이 되어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지식인과 노동자의 연결의 고리가 되었으며, “상호협동과 상호학습”의 태도로 바뀌었다. 이 운동은 급격히 성공적으로 확산되어서 1910년에는 46개소의 인보관이 영국에 생기게 되었다.
영국에서 인보관 사업이 발전하게 된 배경은 역시 산업혁명 이후 급속하게 진행된…
또한 지방화
초기의 사회복지관이 사회문제의 해결이라는 목표를 두고 시작되었지만 여성들이 열악한 사회적 지위를 사회 교육적 프로그램을 통해서 해소하고자 한 점이 주목된다. 그 후 식민통치정부가 인보관 사업에 관심을 보여 서울지역에 인보관의 설립을 추진하였으나 식민지 정부에 의한 설립의도를 반영하여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 사회복지기관으로서의 성격이 농후하였다. 해방이후의 사회복지관은 1950년대 대학부설 사회복지관이 탄생되었다는 것이 돋보이지만 무엇보다도 주민 참여를 통한 지역사회의 문제해결이라는 사회복지관의 본질적인 기능은 1960년대 이후에 부분적으로 강조되어 나타났다. 1970년대 우리나라의 사회복지관은 한국적 모형을 개발하기 위하여 다양한 시도를 한 기간으로 분류되며, 1980년대는 후반에 공식적으로 정부가 사회복지관 사업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회복지관의 성격과 주요기능은 비록 사회복지관의 근본적인 존립목표에 부합되는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한활동은 전역사적인 발전과정에서 부분적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지만, 그 실천적인 영역에서는 하나의 명분으로 더욱 크게 작용하였으며 다양한 사회복지 서비스를 전달하는 복지기관으로서의 기본적인 성격을 유도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사회복지관은 현재 사회복지 전달체계의 최전방 거점으로서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서비스 분야에서 주도적으로 핵심적인 개척자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우리사회는 산업화, 도시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전통적 가족부양 기능과 사회 연대성이 약화되고 있으며, 민주화의 진전과 지방자치제의 실시로 지역주민의 복지욕구는 매우 다양하게 분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향후 우리나라의 사회복지관 발전방향은 사회문제의 해결과 지역사회 조직화의 기능을 활성화하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하겠다. 즉 사회복지관은 직접적인 서비스의 제공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서비스를 조정한다거나, 다른 기관과의 계획수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지역사회조직화의 과정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지방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