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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 까지 우리나라와의 관계속에서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그에따른 영향은 상당하다. 그러면 이러한 중국과의 관계에서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것은 중국과의 역사적 관계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지금부터 중국과의 역사적 관계부터 현재 미래의 관계까지 살펴보고 따라서 중국이 우리나라에 관련해 가지는 의의에 대해서 생각해보겠다.
먼저 중국과의 관계는 선사시대로 거슬러올라가서부터 볼수 있다. 특히 위만의 침입과 한무제의 침입으로 중국과의 접촉이 많아지고,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에는 중국식 문화가 이식되었다. 중국인들은 고조선의 여러 종족을 포함하여 중국의 동쪽에 있던 민족을 동이라고 불렀는데, 중국 선진의 문헌에 동이와의 관계에 대한 많은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조선의 여러 민족도 일찍부터 중국과 접촉하고 있었으리라고 생각된다.
또한, 고대의 중국인들은 동이에 대하여 다른 이민족에 비해 문화수준이 높다고 생각하여 친근하게 여기고 있었다.
‘조선’이라는 이름이 중국의 기록에 처음 보이는 것은 전국시대(기원전 403~221)에 이루어진 전국책,관자 등에서 이며 이들 기록에 따르면 조선은 전국시대 연나라의 동쪽에 있고, 호랑이와 표범의 가죽을 산출하여 중국에서 그것을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기원전 11세기 말 중국의 은나라가 망한 뒤 주나라의 무왕이 은나라 왕실의 친척인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고 하여 기자조선이라고 한다. 그런데 기자가 봉해졌다는 최초의 기록은 전한때의 문헌인 상서대전과 사기에 보이는 것으로, 이것은 은나라가 망하고 800여 년이 지난 뒤의 기록이며, 조선이라는 명칭도 은나라가 망한 뒤 적어도 600년 이후의 기록에 보이…
5세기에 한반도 및 요동 만주지역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고 삼국의 주도적 위치를 유지하고 있던 고구려는 6세기 후반에 들면서 중국 대륙을 통일한 수나라와 충돌하게 되었다.
일하고 신라가 한강유역을 차지한뒤 수나라와 직접적인 외교관계를 맺음으로써 고구려와 중국사이의 우호관계는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였다.
한편 4세기 후반에 그 세력이 커져 남조의 동진과 우호적인 관계를 통하여 북의 고구려를 견제하던 백제는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자 표면상 친화를 유지하면서 내용적으로는 이를 경계하고 왜와 연결하려 하였다. 이와같이 고구려와 백제의 세력이 수나라에 대항하여 연결되는 반면, 신라는 오히려 수나라에 접근하였다. 그리하여 수나라와 그 뒤를 이은 당나라의 여러 차례에 걸친 고구려 침입이 시작되었다.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입하기에 앞서 고구려는 598년에 말갈의 군사를 동원하여 요서지방을 공격하였다, 이에 수나라 문제는 30만대군으로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오히려 큰 타격을 입고 철수하였다. 그 뒤에도 여러차례 걸쳐 고구려를 공격했지만 번번이 실패하여 마침내 이로 말미암아 수나라는 망하고 당나라가 일어났다. 당나라 고조때는 고구려와의 화친을 꾀하여 서로 사신을 파견하고 포로를 교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뒤를 이은 태종은 세계제국을 건설하려는 야심으로 주위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고 고구려에도 압력을 가하였다. 이에 대비하여 고구려는 16년간에 걸쳐 요동지방에 1000리에 이르는 장성을 쌓았다. 644년 드디어 태종은 오랜 준비 끝에 요동에 침략군을 보낸 후 이듬해에 대군을 이끌고 침입하여 요동성을 함락시켰으나 50만 대군으로 2개월이 지나도록 작은 산성인 안시성을 굴복시키지 못한채 결국 철군하고 말았다. 2년뒤 태종은 다시 고구려를 침입할 계획이었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장기전을 택하기로 하였다. 그뒤 당나라 고종은 거듭 고구려를 공격하다가 663년 드디어 신라와 연합해서 백제를 멸망시키고, 이어서 668년에는 고구려도 멸망시켰다.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는 고구려의 옛 땅에 9도독부를 두었으며, 또 평양에는 안동도호부를 두었는데, 그것은 고구려의 옛땅뿐만아니라 백제의 땅과 신라까지 그지배하에 두기 위한 것이었다. 고구려가 망한 직후부터 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