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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칭의 어제 그리고 오늘
< 충칭의 야경 >
작년 18일 중국 충칭(重慶)시. 밤 8시 30분부터 도시 전역에서는 직할시 승격 10주년을 기념하는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도심지 9곳을 비롯하여 완저우(萬州), 푸링(?陵), 용촨(永川) 등 외곽 농촌지역에서도 30분 동안 20만여 발, 1000여종의 폭죽이 어두운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지역 주민인 양쿤밍(44)은 "충칭이 쓰촨(四川)성에서 떨어져 나와 직할시로 승격된 뒤 해마다 도시의 면모가 일신하고 있다."면서 "충칭은 중국 내륙지역에서 고층건물이 가장 많은 도시일 것."이라고 말했다. 천제(38)는 "직할시로 떨어져 나오기 이전 충칭에서 벌어들인 세수입은 대부분 쓰촨성의 수도인 청두로 보내져 그곳에 투자해 그곳을 발전시키기 바빴다."면서 "이제는 중앙정부의 지원에다 탄탄한 중공업 산업 기반에서 얻어지는 발전 동력으로 충칭이 서부지역의 선두 도시로 발돋움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위셩인(33·여)도 "직할시 10년은 도약의 10년이었다"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도 안고 있지만 중국을 대표하는 도시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1997년 초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서부지역 개발을 위해 `서향개발정책`을 발표했다. 충칭·쓰촨·윈난·산시·간쑤 등 12개 성·시로 이뤄진 중국 서부지역은 전 국토의 56%, 주요 광물자원의 50% 이상이 매장된 미개발 개척지다.
넓고 척박한 대지에 약 2억9000만 명이 사는 서부지역의 빈곤과 낙후는 오랫동안 중국정부의 골칫거리였다. 1978년 개혁개방정책 이래 연해지역은 해마다 10% 이상의 고속 경제성장을 하고 막대한 외국인투자를 빨아들이고 있지만 서부지역은 경제발전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다.
중국은 1997년 6월 18일 충칭시를 중앙정부 관할 직할시로 승격시켰다. 서부지역으로 가는 관문이자 양쯔강 상류에 있…
< 충칭의 번화가인 해방비 >
의 흐름에서 탈락했다.
1997년 7월 직할시로 갓 승격된 충칭은 처음에 여타 직할시에 비해 실망스러울 정도로 낙후한 도시였다. 변변한 고층건물도 없는 도심지, 좁고 질 낮은 도로 변에 산비탈을 배경으로 빽빽이 들어선 낡은 아파트와 가옥, 초라한 옷차림과 행색의 사람들, 무질서하고 지저분한 충칭항의 번잡함 등이 그것을 말해주었다.
싼샤(三峽)에 가기 위해 들렀던 충칭은 가난과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날 놀랍도록 발전한 충칭의 면모는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연상케 한다.
18일 직할시 승격 10주년 경축석상에서 왕양(汪洋) 충칭시 공산당 서기는 "충칭은 중국 서남부와 양쯔강 상류지역의 경제사회발전을 이끄는 중요한 원동력으로 성장했다"고 선언했다.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출신으로 후진타오 공산당 총서기의 직계인 왕 당서기는 중국 차세대 정치지도자 중 하나다. 왕 당서기는 "직할시 승격 이래 연평균 10.2%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재정수입도 9배나 증가했다"면서 "가속과 솔선을 앞세워 총생산량 증대, 인민생활 향상, 농촌지역의 균형 발전에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축석상에서는 충칭의 `전국통일도농종합개혁실험구` 지정을 공식 선포했다. 2007년 5월 9일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국무원의 동의를 거쳐 충칭과 쓰촨성 청두를 경제특구로 지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국가급 특구로 지정된 것은 선전(深?), 상하이 푸둥(浦東), 톈진 빈하이(濱海)에 이은 4번째다.
덩샤오핑은 선부론에 따라 연해지역에 경제특구를 만들어 시장경제를 성공적으로 이식했다. 그 여파로 갈수록 커져가는 동·서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후진타오는 균부론을 바탕으로 서부지역에 도농특구를 건설하려 하고 있으며 이에 충칭시는 직할시 승격 경축석상에서 `전국통일도농종합개혁실험구` 기본 계획을 발표했다. 재정체제, 호적제도, 토지관리 및 사용제도, 사회보장제도 등 6개 방면으로 추진될 특구 계획은 앞으로 중국 도시와 농촌의 균형 발전에서 잣대가 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