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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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 de FRANCE&PEOPLE
프랑스 문화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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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랑스 카페 문화의 시작
카페 ‘드 플로르’ & 장 폴 샤르트르
카페 ‘반 고흐’ & 반 고흐
카페 ‘레 되 마고’ & 까뮈
카페 ‘라 클로즈리 데 릴라’ & 페르낭 레제
프랑스 문화를 이끌어간 카페문화
소감
출처 및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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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문화의 시작
프랑스 사람들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는 카페문화의 시작은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커피는 처음부터 환영 받았던 음료는 아니었으나, 터키의 외교관을 통해 루이 14세의 궁정에서부터 서서히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정치적인 이유와 맞물려 파리에서 크게 번성한 카페는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지방으로도 확산되었다.
화려한 인테리어와 최신유행의 커피보다 카페를 더욱더 번성하게 한 것은 몰리에르, 라퐁텐, 라신과 같은 문인들의 발걸음이었고 그것은 계몽시대에까지 이어져, 카페는 글과 연극이 태어나는 문화중심지로서의 역할을 공고히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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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말엽, 프랑스는 예술보다 정치가 더 큰 이슈가 되었던 혁명의 시대였다. 많은 카페들이 이름으로 정치색을 나타내어 자연스럽게 정치의 토론과 행동의 집결지로써 사랑받았다.
시간이 지나고 혁명이 막바지에 이르러 정치에 대한 관심이 줄자, 카페는 지금과 같이 상업적인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를 데탕트(detente)의 시대라고 이르며 카페의 변화무쌍한 시대적 흐름 중에 비교적 평화로운 시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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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혁명과 같이 큰 사건은 일어나지 않지만, 다시금 상류계급 고유의 문화로 인식되어 사교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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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반 고흐
철학가로, 제 2차 세계대전 후에 무신론적 실존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종합을 시도하여 세계적인 영향을 끼친 지식인이다. 어렸을 때 오른쪽 눈을 거의 실명하였다. 고등사범학교시절에 보부아르와 알게 되어 평생 동안 동지적 사랑으로 맺어졌다. 1980년 4월 15일 폐수종으로 사망하여 몽파르 나스 묘지에 안장되었으며 유서는 남기지 않았다.
사르트르는 보부아르와 드 플로르 카페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었다. 글을 쓴 장소는 2층이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곤 했던 장소는 1층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메뉴판에 적혀있는 <나에게 있어 플로르에 이르는 길은 자유에 이르는 길이었다>라는 사르트르의 글만 봐도 사르트르가 얼마나 이 장소를 사랑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샤르트르와 보부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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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의 ‘구토’
1938년에 발표되었으며, 30세의 연금생활자(年金生活者) 로강탱의 일기체 수기(手記)형식으로 된 소설이다.
주인공은 드 로르봉 후작(侯爵)이라는 역사상의 인물에 관해 조사하기 위해 부빌이라는 곳에 머무는 중 카페의 마담과 육체적 관계를 가지기도 하지만, 매우 고독하고 변화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주인공 로캉탱이 일기를 쓰게 된 것은 얼마 전부터 외계(外界)의 사물이나 인간들이 가져다 주는 구토증의 의미를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구토증이란 결국 존재 그 자체가 우연이고 부조리이며, 존재계(存在界)가 모두 의미와 필연성을 상실한 것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이다.
샤르트르와 보부아르의 대표적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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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로르봉 후작은 그것을 옛 애인 아니와의 6년 만의 재회를 앞두고, 공원의 마로니에를 응시하다가 직감적으로 확신하게 된다. 오랜만에 보는 아니도 옛날의 신비적 매력을 잃고 타성에 젖은 허무감 속에서 살고 있다. 절망한 로캉탱은 역사연구도 포기하고 그 곳을 떠나면서 재즈음악이 주는 감동 속에 장차 소설을 쓰는 것이 구원이 되지나 않을까 하고 희망을 가져보는 데서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