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그리스 신화 속 가부장제의 재해석
신화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성향과 사물에 대한 지배적인 믿음을 말한다. 신화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이 자연스럽고 자명한 믿음인 신화는 그 사회를 통제하고 풍속을 고정시키며 사회제도의 위임과 중요성을 부가시킨다. 인간의 삶은 조셉 캠벨의 말처럼 이러한 신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신화는 인간 삶의 제반 상황에 규제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인간의 행동이나 의식에도 신화의 규제력이 발휘되고 있다.
바로 그리스 신화 속에서 여성관과 자녀관. 즉, 가부장제에 관한 것이다. `여자 위에 여신, 여신 위에 남자, 남자 위에 남신!`여신들이 강력한 신권을 지닌, 절대로 죽지 않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일개 남자보다 더 권위 없고 유치한 짓을 일삼는 존재로 등장한다는 사실은 당시 그리스인들의 의식 속에 잠재된 여성에 대한 평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사실 그리스 신화와 비극에 나오는 여성의 이미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클뤼테임네스트라 는 남편을 살해하는 악독한 아내로 헤라와 아프로디테는 질투심에 불타거나 천박한 욕정 에 사로잡힌 여신으로 묘사된다. 경박한 여신들이나 여자의 몸을 한 괴물들의 존재는 여성 혐오증의 산물로, 엘렉트라 콤플렉스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가부장적 성차별의 편견으로 재해석된다. 이러한 점에 있어 남신과 남자들의 이야기인 그리스 신화는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공고한 성차별적 고정관념의 양산의 기제가 아니었는가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여성들을 어떻게 그리고 있으며 또 어떻게 잘못 평가 내려지고 있는 건가?
파리스의 심판: 바다의 여신 테티스는 매우 아름다워 제우스와 포세이돈이 제각기 제 애인으로 삼으려 했었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의 예언에 의하면 테티스가 낳은 아들은 제 아비보다도…
것이다.
`파리스가 다른 선택을 하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한번 해보았다. 아프로디테를 선택하고 그 조건이 이루어진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어떤 여신을 선택하더라도 그 조건은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트로이 전쟁과 같은 다른 피해도 있어도 있었을 것이다. 일단 아프로디테를 버리면 여성과의 사랑에서는 모두 실패할 것이다. 따라서 후손은 없었을 것이며, 있다고 해도 괴물이나 악당이 되었을 것이다. 헤라를 선택했다면 아테나를 버렸기 때문에 전쟁에서의 승리는 기대할 수 없고, 일종의 치사한 모략과 간계에 의존해서 그 권리를 차지할 것이다. 아마도 항상 비난받으며 처참한 인생의 종말을 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아테나를 선택했다면 허구한 날 전쟁터에서만 있어야 하는 용병같은 존재로 전락했을지도 모르겠다. 전쟁에서는 승리할지 모르나 그의 땅은 한뼘만큼도 없을 것이다. 결론은 이 파리스의 심판은 애초에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그 심판을 했다면 아마도 테티스에게 주었을 것이다. 결혼식날 신부보다 더 아름답고, 더 축복받아야 할 존재가 어디 있겠는가?
이 세 여신은 트로이 전쟁에서 서로를 비난하며 싸우는데 이들의 사이가 원래부터 나빴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아르고나우테스의 원정에서는 세 여신이 서로 도와가며 이아손을 도와주었다. 그런데 이 이아손은 거의 파리스 수준의 남자이다. 다른 영웅들처럼 뛰어난 용맹이나 지략으로 고난을 해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여자를 유혹하고 이들의 도움을 받는 존재들이다. 많은 영웅들처럼 케이론의 제자이기도 한 이아손은 아마도 낙제점을 받은 제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중요한 세 여신의 관계에 따라 영웅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아손을 모두 영웅이라 부르지만, 파리스에 대해서는 그렇게 부르기를 꺼리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이야기가 트로이 전쟁의 발단을 설명하기 위한 신화적 접근 방식이라는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소위 그리스 최고의 여신들이 자신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