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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손님’에 나타난 종교적 근본주의와 과학적 합리주의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우리 민족은 이 시기를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 아래에서 살아온 날들로만 기억을 한다. 그러나 소설 손님은 이 시기를 한국전쟁 이전에 일어난 가슴 아픈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그려내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책은 황해도 진지노귀굿 열두 마당을 바탕으로 씌어졌다고 한다. 황해도는 글의 중심적 배경이 되는 신천이 위치한 곳을 상징할 것이며 지노귀굿은 시대의 갈등 속에서 희생한 영혼들을 달래는 넋굿을 상징한다. 즉, 전체적인 이야기는 공간적 배경인 황해도 신천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하여 우리 민족의 씁쓸한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손님은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그려지긴 했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주인공 류요섭 목사의 시선에서 처리되고 있다.
책의 제목인 ‘손님’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 책에서 나타난 손님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의 손님은 1866년 병인양요 당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개신교이다. 개신교는 서구의 대표적인 믿음의 종교라는 점에서 종교적 근본주의를 말하고 있다. 또 다른 손님은 일제 강점기 빈민층과 비 지주계층에게 희망을 준 마르크스주의. 즉 공산주의이다. 이 또한 서구에서 들어왔지만 신이라는 존재를, 김일성의 말을 빌리자면, 한마디로 미신으로 표현한 과학적 이성에 근거한 과학적 합리주의를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 손님을 받는 주인 역할을 하는 존재는 글 초반부에 나오는 류요섭 목사의 증조할머니…
기독교 유일신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한 것이다. 또한 이찌로(박일랑)은 무상몰수 무상분배에 거부하는 기독교 지주집을 찾아가 ‘인민의 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는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를 사회발전의 장애물로 본 극단적인 예이다. 이런 두 상반된 관점을 보는 것을 종교적 입장에서 이해하기 위하여 ‘종교 변동론’이라는 새로운 시각이 존재한다. 종교 변동론이란 ML주의를 유사 종교로 보는 것인데 이는 기독교와 등가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 즉 기독교의 예수를 마르크스주의의 Marx와 기독교의 교회를 마르크스주의의 당과 동일 비교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 받아줄 수 있는 여지가 조금도 없는 상황에서 한반도에서 충돌을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소설 속에서는 기독교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방향으로 설정되어 지주층의 지지를 받는 종교로 묘사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는 평등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소작농과 머슴들의 지지를 받는 사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글을 읽어나가다 보면 류요섭 목사가 조카인 류단열을 만나고 형수와 재회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류단열은 인물은 이 소설의 모든 면을 포괄하고 있는 인물이다. 자신의 아버지인 류요한 장로가 열사람도 넘는 공산주의자들을 죽이고 도망을 가는 바람에 마을에서 고된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다니엘이라는 이름을 증오하게 되고 단열이라는 이름으로 공산주의자가 된다. 종교적 근본주의 관점에서 볼 때 개종은 자신의 종교의 방향으로만 합리화 될 뿐 다른 방향의 종교로 개종은 악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길이다. 그러나 류단열이라는 개인은 기독교에서 무신주의자로 변모한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작가는 기독교나 마르크스주의나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려고 한 점이 확인이 드러난다. 형수를 만난 후에도 형수는 “하나님도 죄가 있다”는 말을 한다. 목사로서 가장 치욕스러운 말을 들었음에도 류요섭 목사는 형의 죄의식의 원인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그러는 동안 형수는 욥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하나님이 인간을 어렵게 만든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