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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와 석굴암 탐방기
불국사와 석굴암은 학창시절 수학여행 코스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서울에 사는 여건 때문에 그동안 학교에서는 가까운 문화유적지를 택했고, 불국사를 방문한 것은 오직 초등학교 시절 가족들과 함께 갔던 적 밖에 없었다. 어릴 적 기억이라 내 기억에서는 서울 근교에서도 볼 수 있는 그저 평범한 큰 절이라 생각했었고, 석굴암은 어릴 적에 가보진 않았지만 평범한 돌로 만든 불상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의 무지를 깨워 준 것은 2002년 2월에 우연히 시청하게 된 KBS역사 스페셜 “석굴암원형을 밝혀라”이었다. 당시의 프로그램은 석굴암의 신비와 과학성을 방영한 것이었는데 그 내용이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고 아무것도 모른 채 구경 만 했던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래서 언젠가는 다시 가서 우리나라의 대표 문화재들을 다시 보겠노라고 다짐했고, 이번에 겨우 여유가 되어 탐방하게 되었다.
토함산 서남쪽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일연이 저술한 <삼국유사>에 의하면 751년(경덕왕10년)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현생의 부모를 위해 창건했다고 한다. 지금의 모습은 1873년 복원하였으며 다보탑, 석가탑, 청운교, 백운교, 연화교, 칠보교 등 경내의 조형물 하나 하나가 신라 불교 미술의 뛰어난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으며 법당과 탑이 서있는 기단 위의 가람 자체가 불국을 상징하고 있다. 불국사 경내는 2009년 12월 21일에 사적 제502호로 지정되었으며 1995년 세계문화유산목록(유네스코)에 등록되었다.
불국사에 입장하니 자하문으로 올라가는 청운·백운교가 보인다. 국보 제 23호인 석조물로 대웅전으로 향하는 자하문과 연결된 다리인데 다리 아래의 속세와 다리위의 부처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 계단은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인 모습이다. 네모 반듯한 모양의 이중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마지막으로 상륜부를 올렸다. 기단은 상층과 하층으로 구분된다. 하층기단은 넓게 만든 반면에 높이를 낮게 했고, 상층기단은 높게 만든 반면에 폭을 좁게 해서 서로 균형을 이루도록 했다. 기단 주위에는 팔방금강좌라고 부르는 연꽃 8개를 연결한 구역이 있는데 석가모니가 성불하시자 여덟 인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 자리에 앉았었는데 그 여덟 자리를
팔방금강좌‘라고 부른다. 직선으로 이어져 있어 외곽을 형성한 듯이 보인다. 또한 부처님의 사리를 두는 깨끗한 곳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구역 안쪽 기단 아래에는 자역석으로 인공암반을 만들었고, 2단의 기단 위에 3층으로 몸돌과 지붕돌을 올렸다. 또 석가탑 아래에 바위를 드러나게 설치하여 암좌임을 표현하였다. 다른 탑에서 볼 수 없는 발상인데 천연스러운 바위 위에 석탑을 단정하게 구조하려면 수평을 맞추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고 ‘그렝이’1)법을 써서 받침돌을 울퉁불퉁한 바위에 따라 도려내고 수평고름 하였다.
그리고 처마 밑 구조도 간결하게 추상하였다. 여러 층급형의 추상 방식은 삼국 이래로 조선조까지 지속된다. 지붕의 물기가 처마로 흘러들지 못하게 하는 물끊기 홈인 절수구를 처마 끝에 만든다. 이 방식은 그 채택이 오래되어 고구려에서는 6세기의 유례를 남겼다. 압록강가의 고구려 장군총 뒤편 배총의 거대한 지붕돌에서도 6세기의 절수구를 볼 수 있다. 처마 좌우 끝에 작은 구멍을 파고, 거기에 금동으로 만든 장엄구를 고정해 장치하였다. 탑들이 남아 있는 오늘의 모습처럼 화강암 석재의 단순한 색감만이 아니고 신라 때는 아주 화려한 금빛이 탑에 찬연하였다. 3층 지붕 위에 노반을 얹고 위에 상륜을 세웠다. 철심에 돌을 다듬어 만든 여러 부재들을 끼워 중첩시켰다. 상륜의 높이와 형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탑의 볼품과 격조가 결정된다. 탑을 조성하는 작가에게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또한 석가탑에는 사리 장치가 있었는데 1966년 10월 13일에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