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R E P O R T
-군가산점제도-
< 목 차 >
Ⅰ. 서론
1. 들어가며..
2. 제대군인 가산점제도의 정의
3. 정말 남성의 분노인가?
4. 누가 이 논란을 시작했나?
Ⅱ. 본론
1. 군가산점제도의 갈등단계별 과정
2. ‘군필자에 대한 보상‘ 담론
3. 여자도 군대 가라?
4. 여자는 출산한다?
5. 군가산점제의 논점 정리
Ⅲ. 결론 - 성대결을 넘어서
Ⅰ. 서론
1. 들어가며..
1999년 12월 23일 헌법재판소는 군필자에게 채용시험에서 만점의 5% 범위 내에서 가산점을 주도록 한 ‘제대군인 지원에 관한 법률’ 제8조 1항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리게 된다. 이 판결이 내려지자 남성들은 반발을 하게 되었고, 아울러 신문 등의 기성언론까지 ‘군필자 분노 폭발’을 대서특필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 각 언론사는 ‘군대에 가야 하는 남자’와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여자’라는 왜곡된 이분법을 동원하였고, 장애인의 문제는 도외시하였다. 이러한 보도태도로 인해 재향군인회 등의 조직적 시위가 이어지자 국민회의는 2000년 1월 6일, ‘국가봉사경력가산점제’를 발표하여 사실상 가산점제도의 존치를 선언하게 된다. 하지만…
론의 존재였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구조가 1980년대 중후반부터 흔들리게 되는데, 그것은 군대란 곳이 실제로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똑같이’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현역 내에서의 보직배치 등이 기존 사회의 계층 및 학력 구조를 그대로 반복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면서, 결국 사회에서 밑바닥에 있는 남성들이 군대 내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하게 되는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당시 일반화된 병역비리는 군대 경험이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라는 인식으로 변모시켰다. 즉, 군대 가는 사람은 힘이 없어 끌려가는 약자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징병제가 문제시 되지 않았던 것은 강력한 안보이데올로기가 국민 개개인의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함으로써 문제의 제기 자체가 억눌려져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억눌려져왔던 불만들이 개별적인 심적 상처로 곪아 가고 있다가 1999년 군가산점제도에 대한 위헌판결이 내려진 당시에 남성들의 분노로 표출된 것이다. 이러한 분노는 방치해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그 동안 문제시 하지 않았던 ‘군대’문제를 근본적으로 사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한국 사회에서 군대란 무엇이며 개별 한국인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또한 이런 문제들이 문제시될 수 없었다고 하는 그 사실이 한국의 전반적 사회구조를 어떻게 만들어왔는지를 얘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4. 누가 이 논란을 시작했나?
1999년도의 군가산점 위헌 판결 이전인 1998년 5월 5일, 국방부는 7급 이하 공무원시험에 적용되던 군필자 가산점을 일반기업체와 국가기관 모두에 적용하겠다고 발표하고 나선다. 이러한 발표 배경에는 1997년 대선 때 불거진 병역비리 의혹이 있었으며, 이러한 병역비리에 대한 저항을 막기 위해 내놓은 것이 군가산점 확대였다. 이는 여성을 차별하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그 결과는 자명한 것으로, 여성고용비율이 낮은 상황에서 여성들이 일반기업이나 5급 공무원에 채용되는 것이 어려워지게 되는 것이었다. 헌법소원은 이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