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해방 직후 박현영의 조선공산당의 통일 정책
1. 조선공산당의 성격
조선공산당은 박헌영 선생의 주도 아래 결성된 재건파 정책의 당이었고 민주주의 민족 전선의 중추 세력이었다. 박헌영 선생은 가장 급진적인 인물로 꼽히는 분으로서 친일파에 대해서도 가장 강경한 입장을 표방하였다. 이 당은 후일 근로 인민당, 조선 신민당과 결합하여 1948년에 남조선 노동당을 결성하였지만 당의 본질은 여전히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지향하였고 따라서 그 성격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우리는 남로당의 통일 정책도 그냥 조선공산당의 통일 정책으로 합치기로 하고 남로당에 대한 별도의 분석은 하지 않기로 하였다.
2. 조선공산당의 통일 정책
조선공산당은 해방을 한민족의 자주적인 노력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연합국의 힘에 의해 실현된 것이라고 규정하며 박헌영 선생도 역시 “어느 나라를 물론하고 한 개로 분리하여 고립적으로 부분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이들이 한국 문제를 국제적인 입장에서 해결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공산당의 당면 임무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영도권을 확립하기 위해 대중을 전취하여야 하며 대중이 지지하는 혁명적 인민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하여 수립된 정부는 토지 개혁, 언론?집회?결사?출판의 자유, 남녀 평등, 선거권 및 피선거권의 평등, 8시간 노동제, 완전 고용, 시민 생활의 안정, 노동자 생활의 급진적인 개선 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주장의 배경에는 해방 직후 박헌영과 여운형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던 건국준비위원회를 모태로 하여 탄생한 ‘인공’을 중심으로 이를 발전시켜 나가 통일을 해야 한다는 사상이 짙게 깔려 있다. 이는 1946년 잡지『춘추 (春秋)』가 …
이를 실현하기 위해 조선공산당의 책임 비서였던 박헌영을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① 일본제국주의세력과 친일파 및 민족배반자를 철저히 조선으로부터 驅逐?肅淸할 것
② 진보적 민주주의강령을 내걸고 이 원칙 밑에서 모든 민주주의요소의 집결로써 전조선민족통일 전설을 결성하고 진보적 민주주의의 강령을 선포할 것
③ 이 통일 전선을 기초로 하여 통일 정권을 수립할 것이고 이 통일정부는 진부적 민주주의의 기본과업을 실시할 것이며 특히 조선근로인민의 이해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할 것
④ 전조선민족통일전선은 통일정부를 지지하되 이것이 민주주의적 원칙을 밟아 나가는 가를 항상 검사하야 이것을 세상에 발표해야 할 것
① 일본제국주의 잔존세력과 친일파, 민족반역자 숙청문제를 같이 해결하자는 제의에 묵살, 불응한 것
② 다수득표의 권력강점을 자적하고 단체대표가 아닌 자기단체 소속군중까지를 회장 안에 끌어들이고 다수를 점령하는 동시에 정말로 참가자격이 있는 여러 단체의 대표자는 모당원의 방해로 입장하지 못한 것
③ 회의 중 의사진행에 있어 민주주의적?동포애적 입장에서 서로 의견 발표할 기회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우익단체의 의사만을 강력히 내세우고 그들의 주장만으로 전체 문제를 해결한 것
④ 사대 연합국에 보낸다는 소위 결의문도 그 내용에 있어서 조선민족전체의 의사라고 볼 수 없는 문제를 급하여 가지고 연합국의 그릇되지 않은 처지에 대하여서까지도 질문 혹은 논란하는 성질의 문구를 남용하여 이것이 삼천만 동포의 전언이라고 보낸다는 것
강력히 내세우고 그들의 주장만으로 전체 문제를 해결한 것
④ 사대 연합국에 보낸다는 소위 결의문도 그 내용에 있어서 조선민족전체의 의사라고 볼 수 없는 문제를 급하여 가지고 연합국의 그릇되지 않은 처지에 대하여서까지도 질문 혹은 논란하는 성질의 문구를 남용하여 이것이 삼천만 동포의 전언이라고 보낸다는 것
즉 조선공산당은 일차적으로 국내의 여러 정파 가운데 친일파를 제거한 후에 진보적인 통일 전선을 결성하고, 이 통일전선을 바탕으로 한 통일 정부를 구성한다는 3단계 통일 전략을 내세웠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공산당의 이 통일 정책은 ‘인공’이 미군정에 의해 부인 당해 유명무실화되는 바람에 실현될 수 없었다.
공산당은 1945년 말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정되었던 신탁통치 사항에 대하여 처음에는 “약소 민족의 해방을 약속한 소련이 이런 결정을 할 리 만무하다. 이런 선언은 모략일 것이다. 만약 사실이라면 단호 배격할 것이다.”라고 하며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에 모스크바 3상회의 주요 결정 내용을 “장구한 일본 통치의 결과로 남아 있는 악독한 일본 제국주의 잔재를 철저적으로 청소하고 노선을 참된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게 하기 위하여 4국이 협력과 원조하여 준다는 것이다.”라고 해석한 공산당은 열렬한 찬탁으로 돌아서고 통일이 지연되는 이유는 일본적 잔재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당시 우익 진영의 반탁 결정과 배치되었는데 “일본 제국주의의 장기적 통치의 잔존 세력이 완전히 청산되지 못하였고 일제에 완전히 강속 되었던 산업 경제가 총파업의 위기에 놓여 있고 민족 자체의 민주주의적 통일이 완성되지 못한” 내부적인 약점으로 인해 4개국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참된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정 측이 정당 통일 운동과 반탁 운동을 거국적으로 하기 위하여 비상 국민 회의를 조직하자 “독립보다는 법통, 통일보다는 지위에 미련을 갖는다”고 비판하고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대해 검토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