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차례
제5공화국의 국가구조
1. 제5공화국의 구조와 성격
5공화국은 출발부터가 강력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억압하면서 시작된 강성 權威主義體制였다. 제3공화국이 4.19의 강력한 민주화의 요구와 이행을 5.16이라는 불법적인 쿠테타로 중단시키고 등장한 것처럼, 제5공화국 역시 1980년 민주화의 봄을 억압하고 3단계의 쿠테타를 통하여 성립되었다.
제1단계 쿠테타(12.12)는 군내부에서 거행되었다. 당시 전두환은 군의 정치적 개입을 반대하면서 중립을 주장하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이건영 삼군사령관, 정병주 특전사령관, 문흥구 합참본부장, 장태완 수경사령관 등 주요 요직의 장군들을 제거함으로써 군내부에 자신의 확고부동한 입지를 굳히고, 현역군인으로서는 맡을 수 없는 중앙정보부장(서리)을 겸임하게 되었다. 따라서 전두한은 가장 강력한 정보망과 능력을 지닌 국가기구로서의 중앙정보부와 군의 보안사령부를 장악하게 되었다. 제2단계 쿠테타(5.17)는 對政治圈 쿠데타로써 민주화의 봄을...
본문/내용
제5공화국의 국가구조
1. 제5공화국의 구조와 성격
5공화국은 출발부터가 강력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억압하면서 시작된 강성 權威主義體制였다. 제3공화국이 4.19의 강력한 민주화의 요구와 이행을 5.16이라는 불법적인 쿠테타로 중단시키고 등장한 것처럼, 제5공화국 역시 1980년 민주화의 봄을 억압하고 3단계의 쿠테타를 통하여 성립되었다.
제1단계 쿠테타(12.12)는 군내부에서 거행되었다. 당시 전두환은 군의 정치적 개입을 반대하면서 중립을 주장하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이건영 삼군사령관, 정병주 특전사령관, 문흥구 합참본부장, 장태완 수경사령관 등 주요 요직의 장군들을 제거함으로써 군내부에 자신의 확고부동한 입지를 굳히고, 현역군인으로서는 맡을 수 없는 중앙정보부장(서리)을 겸임하게 되었다. 따라서 전두한은 가장 강력한 정보망과 능력을 지닌 국가기구로서의 중앙정보부와 군의 보안사령부를 장악하게 되었다. 제2단계 쿠테타(5.17)는 對政治圈 쿠데타로써 민주화의 봄을 전면적으로 억압하는 직접적인 수단인 1880년 5월 17일의 계엄확대조치와 민간정치인의 구속으로 이루어졌으며, 마지막으로 제3단계 쿠데타는 5공화국의 정통성…
개방은 국내의 가격을 파괴하였다. 결국 농약을 마시고 자살하는 농민들이 하나 둘 생겨났으며, “소수의 특권계층을 위해서 다수의 농민을 희생시킨 정부당국은 농업의 현재상황을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주로 중등교육을 받은 30대를 중심으로 하는 젊은 층들을 위주로 카톨릭농민회와 기독교농민회가 조직되었고, 농산물 개방과 맞물려 이들의 행보는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있어서 우리가 주목하여야 할 또 다른 중요한 특징중의 하나는 강력한 反美主義의 대두이다. 물론 한국전쟁과 미국의 對韓半島 정책 등에 관련하여 한국에서의 반미주의는 서서히 증가하여 왔지만, 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급격한 확산을 이루게 된다.
1980년 5월의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의 공수부대 투입으로 인한 유혈진압이 미국관련설을 불러일으켰고, 비록 미국은 이를 극구 부인했지만 당시의 주한 미대사 글레이스틴(William Gleysteen, Jr.)이 한국군을 광주에 투입할 것을 승인했다고 인정함으로써 광주민주화운동의 유혈진압을 미국이 승인했음을 인정하였다. 광주문제로 인한 반미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증대되기 시작하는 미국의 시장개방 압력은 한국민들에게 반미감정을 한층 더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사회운동세력들의 결집의 징조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제까지 조직적인 연계를 지니지 못했던 대중운동이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民衆運動聯合(민통련; 1984)이라는 반지배연합으로 결성되기에 이른 것이다. 민통련은 1986년 5월 3일 한국에서의 미군철수와 핵무기 철수를 요구하는 5.3 인천시위를 주도하였으며 19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민중운동의 주체로 5공화국의 행보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