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신경향파 (최서해)
1. 최서해(崔曙海)의 생애
본명은 학송(鶴松)이며, 함경북도 성진에서 출생하였다. ‘서해(曙海)’는 아호로서 학송이 자신의 이름을 숨긴채 ‘서해’라는 가명으로 쓴 시를 북선일일신문(北鮮日日新聞)에 기고했는데, 이 시에 곡을 붙여 노래한 음악대회가 열렸다. 이에 크게 감동하여 ‘서해’를 아호로 정해버린 것이다. 학력은 성진의 보통학교 졸업설과 중퇴설이 있어 분명치 않다. 어쨌든 그의 학력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부친은 한방 의사였으나 독립군이 되기 위하여1) 일찍 가출하여 만주 등지를 유랑하였다. 독립군이 된 아버지를 찾아 만주로 가서 각지로 전전하며 품팔이·나무장수·두부장수 등 밑바닥 생활을 뼈저리게 체험하였는데, 이러한 체험이 그의 문학의 바탕을 이루게 하였다. 1924년 <동아일보>에 [토혈(吐血)]을, <조선문단>에 [고국]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고 ,계속 <탈출기(脫出記)> <기아(飢餓)와 살륙(殺戮)>을 발표하면서 신경향파문학(新傾向派文學)의 기수로서 각광을 받았다. 특히 <탈출기>는 살 길을 찾아 간도로 이주한 가난한 부부와 노모 세 식구의 눈물겨운 참상을 박진감 있게 묘사한 작품으로 신경향파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당시의 빈곤의 참상과 체험을 토대로 묘사한 것이어서 그 간결하고 직선적인 문체에 힘입어 한층 더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후기에 어느정도 삶에 정착하면서, 빈궁문학, 경향파문학에서 탈피해 인도주의적 작품을 썻으나, 예술적인 형상화가 미흡했던 탓으로 초기의 인기를 지속하지 못하고 불우한 말년을 살다가 일찍 죽었다. <십삼원(拾參圓)> <금붕어> <박돌(朴乭)의 죽음> <살려는 사람들> <큰물 진 뒤> <폭군> <홍염(紅焰)> <혈흔(血痕> 등이 있다.2)
☞ 최서해의 문학은 그의 극도로 빈궁했던 시절의 체험들과 아주 밀접히 연관된다. 정식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2. 최서해 소설의 시대적 배경
아니다. 남을 안 죽이면 내가 죽는다. 아내는 죽는다. 응 소용없다. 선한 일! 죽어서 천당보다 악한 짓이라도 해야 살아서 잘 먹지!5)
게 살 수 있을 것인가`하는 말을 거의 유행어와 같이 입에 담는 것을 본다.…… 그렇다, `다 죽는 것밖에 없다`는 말은 다만 말뿐인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실의 실제 현상으로서 나타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땅에서 살 수 없음을 알고 이 고장에서 죽을 길로 가는 사람의 수가 느는 반면 이곳을 떠나는 것은 무슨 방법이 서지 않을까 해서 남으로 바다 건너 일분으로 가고 북으로 강을 건너 만주의 노령으로 가는 사람의 수도 날로 늘고 있다. 그들이 삶의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죽음의 길로 향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농업국의 보수성을 띤 농민들이 고국 땅을 떠나는 그 용단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연 조선에 있어 조선인은 사실 이대로 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조선에서 살 수 없는 그들이 보장없는 외지에서 어떻게 좀 더 나은 생을 바랄 수 있을 것인가. 이 땅에 남아 죽을 이 길을 택하는 사람과 그리 다를 바 없다. 불쌍한 사람들이다.4)
다음의 진술은 최서해의 문학적 성격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아니다. 남을 안 죽이면 내가 죽는다. 아내는 죽는다. 응 소용없다. 선한 일! 죽어서 천당보다 악한 짓이라도 해야 살아서 잘 먹지!5)
극도의 빈궁으로 인해 1919년 어머니와 함께 간도롷 떠난 그는 `어떤 때는 상투잡이가 되어 나무바리 장수도 되어 보고 산으로 나무 하러 갔다가 되놈한테 붙들리어 죽을 고비도 넘겨 보고 두부장수도 하여 보고 노동판에서 십장 노릇도 하여 보고 XX단에서 따라다니노라고 총도 메고 눈 쌓인 얼음 벌판에서 밤을 새워 가며 지켜보기 등등…… 이러한 몇 가지 실례를 들더라도 (그는) 한 개의 소설적 인간이었다.
그의 짧고도 비극적인 생애는 그대로 작품 속으로 반영되는데 이 때문에 그의 문학을 `체험 문학`, 그를 `체험 작가`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의 이야기가 자신의 체험한 바의 그것이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경우 우리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의 문학에 체험 세계의 확대와 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