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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경제 상황
십자군 전쟁으로 많은 피해도 있었지만
서유럽은 선진 문화인 비잔틴과 이슬람 문화를 받아들여 문화가 빠른 속도로 발전했습니다.
동방 무역이 발전하는 바람에 이태리북부에 도시들이 크게 발전하고 상공업이 성행했습니다
--->무역의 발전으로 어느정도 살림이 유지되었겠죠
십자군 운동으로 통상범위가 넓어지자 지중해 상업권이 크게 발달하여 베네치아, 제노바 등의
이태리 북부 도시에서 향신료, 염류, 견직물등이 거래되었습니다. 또한, 밀라노와 피렌체에서도 상업과 모직물 공업이 발달하였습니다.
한편, 북유럽 플랑드르 지방, 북부 독일등의 북유럽 상권도 번창했습니다. 이 북유럽상권과
지중해 상권을 연결해 주는 내륙지방의 도시가 크게 발달하였는데 프랑스의 샹파뉴 지방이
유명했죠.
상권 발달과 더불어 자치 도시들이 성장하였습니다. 국왕이나 제후로부터 특허장을 얻어 주변에 성벽을 쌓고 행정, 사법부를 조직해 독립적인 도시를 건설하였어요. 도시들끼리 도시동맹을 맺어 결속을 강화하고 상권을 장악하였습니다. 북부 이태리의 롬바르디아 동맹, 북부 독일의 한자 동맹등이 있었죠.
11-13세기의 경제활력, 1300 년경이후 급격한 쇠퇴와 불황 -->결론이라고나 할까요
1.중세 말의 상황
14,5세기에 이르러 중세적 사회질서와 문명은 동요하기에 이르렀다. 경제적으로 우선 中世盛期의 팽창이 정지 또는 수축되었다. 개간활동이 한계에 이르렀고, 농업생산성이 감퇴하였다. 이는 식량공급의 부족과 주민의 만성적인 영양부족을 의미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Pest와 같은 일련의 역병이 닥쳐와 심각한 인구의…
1) 사회경제의 위기
A. 농업위기
한계지에서의 곡물경작이 포기되고, 심지어 여러 개의 촌락과 그 경작지가 放棄되는 사태까지 전개되었다.→ 廢村(Wustungen), 농촌황폐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회에서 농업생산은 한계에 봉착했다. 소출은 떨어지고, 인구는 과잉이었다.
한편 오늘날의 연구에 의하면 14세기에는 기상이변도 전개되었다. 기후가 한랭하고 습도가 높아졌다. Greenland가 빙하로 뒤덮인 것도 이 시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강우량도 증가했다. 마침내 1315-17에 유럽 각지에 천재지변과 함께 대흉작이 닥쳐왔다. 광범한 지역에 대기근이 닥쳐왔다. 비위생적인 환경과 불충분한 영양공급으로 이미 허약해져 있던 중세인에게 이와 같은 급작한 환경변경은 많은 인구의 손실을 강요했다.
독일의 경제사가 Wilhelm Abel은 이와 같은 일련의 농업불황을 근대경제학의 이론모델로 설명한 고전적인 견해를 안출했다. 즉 인구변동으로 인한 농산물의 가격변동에 주목한 것이다.
14세기전반기의 재난과 특히 중엽의 흑사병으로 인하여 인구가 급감한데 비하여 농산물의 생산은 일정기간 비탄력적으로 반응, 그리하여 농산물의 공급과잉으로 인한 가격폭락이 초래되었다. 이와 같은 경기운동(Konjunktur)은 15세기 중엽까지 지속되었다.
한계지에서의 곡물경작이 포기되고, 심지어 여러 개의 촌락과 그 경작지가 放棄되는 사태까지 전개되었다.→ 廢村(Wustungen), 농촌황폐
이 시기에는 大領主, 중규모 이상의 토지를 보유한 대농민 - 농산물, 특히 곡물의 공급자 - 이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는 한편, 인구감소로 인하여 노동력이 희소해져 단순노동자의 처지가 유리해 지는 국면이었다. 희소해진 농업노동력을 유인하기 위해 영주들은 地代(rent)를 引下하고, 임금은 상대적으로 상승하였다.
농업경영자, 토지소유자들이 곤경에 처한 반면 도시의 수공업자, 匠人들은 임금과 공산품의 상승으로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Das goldene Zeitalter des Handwerks
15세기 중엽부터 경기변동의 역전이 이루어 졌다. 인구가 최하강국면에서 다시 급작히 증대하는 데 비하여 역시 비탄력적인 농업생산의 대응으로 15,6세기에 농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