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한국 현대사) 백범 김구의 남북협상 시도와 그 의의
1. 남북 협상의 배경
한국문제는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과정의 한 과제에 지나지 않는다. 남북협상은 우선 제2차 세계대전을 주도한 미국과 소련이라는 국제정치의 두 주역과 전혀 무관할 수는 없다. 한반도의 현실은 트루먼대통령이 미국의 반공군사개입정책을 발표하는 것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으며 미국의 對한반도 정책이 소련으로부터의 영향력 견제라는 형태로 전환 되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임시 통일정부 수립을 목적으로한 제 1,2차 미소공동위가 제대로 추진될리는 없었다. 이것은 한반도의 정치상황이 필연적으로 보다 고차원적인 정치적 타개에 의존할 수 밖에 없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치적 타개의 구체적 모습은 한국문제의 UN이관, 남한내의 단정론과 남북협상론으로 나타나고 있다.
2. 남북 협상의 내용
제 2차 미소공동위가 결렬되고 난후 한국문제가 UN으로 이관됨과 동시에 신탁통치안의 그 의미가 상실되고 이 때, 남북협상론을 지지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것은 남한의 정계가 크게 단일정부 수립을 찬성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으로 양분되어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승만은 남한정국이 단일정부수립론이 기정사실로 굳어져 가고 있는 현실에서 정국의 주도권을 김구에게 빼앗기지 않고 상황을 단정론으로 확산시키고 김구의 논리가 무엇이던 간에 그 논리의 강도를 약화시키려 했다.
그래서 이승만 계열은 남북협상에 대해 자주정부 수립의 문제가 아니라 남로당?북로당 모략에 빠져 조선에 혼란을 가져온다는 비난을 하고 있다. 김구와 김규식은 단일정부 수립론이 남한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정치적 타개책을 생각하지 않을 수 …
3. 마치며
에 많은 차이가 나는 회의 모습이었다.
4월 30일 까지 김구, 김규식등의 요구에 의해 남북인사 15인을 중심으로 남북조선 諸정당 사회단체 지도자 협의회가 개최되었다. 여기서 자주적인 민족 통일구 가수립을 천명하고 단정에 대해서는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단정수립이 되는 경우 또 다른 연석회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남북협상에 임하는 북한의 태도는 몇몇 정치지도자의 협상보다는 전조선의 정당,사회단체의 상징적 대표성에 의한 회담의 모양으로 남북협상을 이끌어 나갔다. 이런상황에서 어떤 실질적인 대안을 찾기가 어려웠다.
5?10 단정선거 이후 남한정국은 이승만, 한민당이 정국을 주도해 나갔다. 평양에서 열린 2차연석회의(6월 29일 ~ 7월 5일)에서의 내용은 남한의 국회를 비법적 조직체라고 규정하고, 조선최고 인민회의 창설과 더불어 외국 군대의 절차상의 필요에 의해 개최 된 것이고, 남북한 각각 단일정부의 형태를 운영하게 된 것이다.
3. 마치며
아직도 한민족의 최대 과제는 통일정부 수립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은 남북협상이 아직도 그 정치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분단 현실은 남북협상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