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차례
진보적 사회사업실천의 전개사 (사회복지)
1. 인보관 운동과 사회개혁
개인변화와 환경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사회사업실천의 성격은 사회사업의 전문화와 사회개혁이라는 두가지의 큰 흐름으로 존재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877년에 시작한 COS(Charity Organization Society)는 자유-자본주의를 배경으로 전문사회사업을 태동하였고 1898년 뉴욕 COS의 여름훈련코스로 부터 사회사업전문교육이 시작되게 된다. 인보관운동의 경우, 운동가들이 사회개혁에 있어 나름대로의 노력을 투여하여 성과를 보게 된다. 정치적 행동을 통하여 사회재건을 이룩한다는 순수한 개혁주의를 표방한 초기의 인보관 운동가들을 시작으로 정치적사회적 행동을 위한 사회개혁의 예는 시작된다.
이 당시의 인보관운동가들의 주 활동은 ① 의무교육과 아동노동금지, ② 여성노동자의 최대 노동시간과 최저임금, ③ 노동자보상법, 모성연금, 공공위생과 보건에 대한 새로운 기준의 도입 ④ 청소년 범죄자를 위한...
본문/내용
진보적 사회사업실천의 전개사 (사회복지)
1. 인보관 운동과 사회개혁
개인변화와 환경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사회사업실천의 성격은 사회사업의 전문화와 사회개혁이라는 두가지의 큰 흐름으로 존재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877년에 시작한 COS(Charity Organization Society)는 자유-자본주의를 배경으로 전문사회사업을 태동하였고 1898년 뉴욕 COS의 여름훈련코스로 부터 사회사업전문교육이 시작되게 된다. 인보관운동의 경우, 운동가들이 사회개혁에 있어 나름대로의 노력을 투여하여 성과를 보게 된다. 정치적 행동을 통하여 사회재건을 이룩한다는 순수한 개혁주의를 표방한 초기의 인보관 운동가들을 시작으로 정치적?사회적 행동을 위한 사회개혁의 예는 시작된다.
이 당시의 인보관운동가들의 주 활동은 ① 의무교육과 아동노동금지, ② 여성노동자의 최대 노동시간과 최저임금, ③ 노동자보상법, 모성연금, 공공위생과 보건에 대한 새로운 기준의 도입 ④ 청소년 범죄자를 위한 특별법원, ⑤ 방문간호사, 방문교사 등과 같은 영역에서 이루어졌고 이민자보호, 여성착취, 지적민주주의, 시민의 자유권, 국제평화 등과 같은 많은 영역으로도 개입하였다…
상황에서 진보주의자들은 정부와 사회사업이 진실로 빈곤한 자나 소외된 자의 욕구에 부응하고 있는 가를 질문하며 연방정부의 대책은 부적합한 것이었으며 뉴딜정책도 실업구제에 적극적으로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고소득자들을 더욱 지지하도록 계획되었다고 혹평하였다. 또한 결과적으로 사회사업은 이러한 정부정책의 수행자로서의 현상유지와 함께 클라이언트로부터의 유리를 초래하였다고 비판하였다.
이 시기의 많은 진보적 사회사업가들은 Rank and file운동에 참여 하였는데 이 운동은 대공황의 사회적 상황과 공황의 위기에 대처하는 사회사업의 실패를 지적하고 산업노동운동과의 연계투쟁에 참여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 운동은 미국의 뉴딜정책, 급진운동, 좌익운동과 연합하였으며 사회사업가의 노동조건 개선, 실업, 공적부조, 사회보험, 시민권, 평화운동, 정신건강 등 광범위한 사회문제 속에서 사회개혁을 지지하였고 사회사업가들을 조직화하여 더 큰 산업노동운동으로 연합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들이 발행한 잡지인 Social Work Today는 계속적으로 사회보장계획안에 포함되어 있는 여러가지 법안의 현실과의 부적합성, 노동운동과 사회사업가와의 관계, 파시즘의 위협등을 분석해 내고 진보적 실천을 사회질서의 대안으로 강조했다.
한편 사회사업이 전문직으로서의 지위와 존경을 얻게 되고 위상이 높아지게 되었지만 보수적인 사회사업가들은 여전히 개별사회사업의 지배력을 강력히 옹호하던 시기였으므로 진보적 사회사업가들은 개별사회사업 지향의 관점을 버릴 것을 주장하였고, 자신을 노동자로 간주하고 전국노동운동기구에 가입하여 사회사업실천을 노동운동의 일환으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진보적 실천가들의 계급관에 기초한 정치분석과 행동은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심각한 사회불안으로 느껴졌으며 많은 사회사업가들은 정치와는 무관한 개별사회사업의 전문화에 더욱 몰두하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고 전후의 냉전체체와 매카시즘의 전횡속에서 진보적 사회사업실천은 사회사업의 정통으로 수용되지 못한채 명맥만을 유지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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