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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개항에서 국권상실기 까지 도시 계획사 (1876~1910)
1. 진행과정
조선조500년의 전통 성곽도시가 좋은 의미에서 새로운 도시로, 나쁜 의미에서는 전통도시파괴가 시작된 것은 19세기 말의 일로 우리의 정책과 기술에 의한 것이 아니고 일제에 의하여 이룩된 것이다.
19세기 말의 일로 대원군의 쇄국주의는 선진열강의 수요외교에 일체 응하지 아니하였으나 1876년 일제의 강요된 강화도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1883년부터 7개국과 차례로 통상조약을 1886년까지 4년간에 걸쳐 맺게 되었다. 불평등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이후 일제의 한반도 진출은 대륙경영까지 포함되어 이 땅에 경제적 침략이 시도되었다.
한국에 있어서 일제의 침략이 초기에는 적극화되지 않았다. 처음에 일본상인들은 정착적인 사업은 기도하지 않은 채 단시일내에 일확천금하고 본국으로 귀환하여 영주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1895년 청일전쟁이 승리로 끝남에 따라 일본의 토지점탈과 한국내 영주자가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강화도조약에는 2개항구를 개항하고 개항지에서의 토지 및 가옥임차를 할 수 있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개항지에서 거유지역을 설정하고 토지와 가옥을 임차소유하게 되었다.
따라서 1876년 부산이 최초로 개항되고, 1880년 원산, 1883년 인천의 3개항이 개항되자 일정한 지역을 일본인거유지로 설정, 일상인이 거주하였으며 그곳을 근거지로 일제의 상품이 국내에 반입되었다. 이들의 수법은 주로 상품매매, 고리대금 등의 소극적 방법이었으나 청일 전쟁이 그들의 승리로 돌아간 이후에는 적극화하여 개항수도 늘어 났다. 1897년 목포, 1897년 진남포, 1898년 마산, 1899년 군산의 순으로 개항되었고 일본의 대자본가가 광산, 철도, 토지투자에 착수하였다.
대재벌의 토지투자는 1905년을 전후하여 1910년 강점때까지의 6~7년간이었으며 주로 삼남지방에 집…
2. 식민지도시 설계
광무 10년 1윌 6일) 경무청령 제 2 호로 가로관리규칙이 공포되었다. 이것은 명칭 그대로 가로관리를 위한 규칙으로 도시계획을 위한 법률은 아니었지만 시가지와 관련하여 제정된 최초의 근대적 규칙이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그 밖에 일제가 설치한 통감부(統監部)에서 서울과 개항도시 등의 13곳에 이사청(理事廳)을 두어 군산이사청이 도로취업규칙을 청진 이사청이 가옥건축규칙 등 을 제정하고 시행하였으나 가옥건축을 통제하는 정도의 간단한 규정에 불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