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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일대기
1. 들어가며
그는 1910에 태어나 1937에 사망한 시인이자 소설가로 본명은 김혜경이다. 서울 출생으로 1929년 경성공고 건축과 졸업한 후, 1931년 시 <이상한 가역반응(可逆反應)> <파편의 경치> <▽의 유희> <공복> < 삼차각설계도> 등을 <조선과 건축>에 발표하는 한편 이해의 조선미술전람회에 양화 <자화상>을 출품, 입선됬었다.
2. 이상이라는 필명의 기원
1932년 역시 <조선과 건축>에 시 <건축 무한6면각체>를 발표하면서 처음으로 이상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이 무렵 그는 백부의 알선으로 조선총독부 내무부 건축과 기수로, 또 관방회계과 영선계로 전전하며 근무하였다. 이상이란 이름은 기수 시절 인부들이 그를 가리켜 ‘리상’이라고 부른 데 연유한다지만 고공 졸업엘범에 그러한 별명이 나와 있다는 설도 있다.
<조선과 건축>에 발표된 그의 초기 시편들은 주로 일본어로 씌여져 있는데, 내용이나 형식이 실험적이고 이색적이어서 당시의 문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미 그에게는 전통적 문학의 계승이니 혹은 그 정서적 바탕위에서 언어를 갈고 닦는 등 서정의 맛은 없었다.
숫자와 기하학적 낱말,그리고 관념적 한자언어로 구성된 극히 난해한 문학으로 나타났던 것이다.그러나 이 난해안 문학이야마로 그가 22세에 시도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의식세계에 대한 내시적 추구혔으며 지금도 일부의 추종자 또는 그 유사한 시도자들을 낳고 있는 결과를 초래했다.
1933년 폐결핵에 의한 각혈로 총독부 기수직을 버리고 황해도 배천온천으로 요양을 갔다가 기생 금홍을 알게 된 그는 금홍과 함께 서울로 돌아와 백부가 물려 준 통인동 집을 처분,‘제비’라는 다방을 차렸다.
이 무렵부터 격심한 고독과 절망, 그리고 자의식에 침전돼 수염과 머리를 깎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기도 하고, 온종일 어둠침침한 방에 박혀 술만 마시기도 하였다.1934년 난…
이 무렵부터 격심한 고독과 절망, 그리고 자의식에 침전돼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