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서양의 복지국가 철학의 시초
1. 들어가며
영국에서는 홉슨, 페비안 사회주의자, 그리고 토니 등이 산업사회의 병폐를 치유하기 위한 적극적 자유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투쟁을 주도했다. 그들은 국가의 역할을 인도주의적 목표를 강조하는 각종의 사회관계 및 사회조직을 육성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국가는 선한 생활에 방해가 되는 것을 제거하고, 개인이 행하고 즐길 가치가 있을 것을 행하고 즐길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의 영향으로 영국에서는 사반세기 동안 각종 개혁조치가 취해졌다. 거기에는 공장의 작업안전을 위한 입법(1891, 1895), 여성 및 아동의 노동시간 규제(1895), 빈민가 정리의 개시(1890), 노동조합의 권한확대(1890-1900), 도시계획 및 재개발사업의 개시(1909), 그리고 불구 및 질별보험(1911), 등이 포함된다. 현대 복지국가의 주된 요소가 다 망라되어 있었다.
2. 홉슨의 철학
홉슨(Join A. Hobson, 1858-1940)은 이러한 사회입법의 배경이 된 사상을 주창한 주요 인물의 하나였다. 그는 비정통파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대학교수직 취임이 거부되었지만 끊임없이 책과 논문을 써냈다. 이 책들은 풍부한 통찰력과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갖고 있었으므로 당대의 정통파 인사들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정도였다.
초기저작인 「산업생리학」(Physiology of Industry)은 불황의 원인을 분석한 것인데 불황의 원인을 소비지출의 부족에서 찾았다. 「현대자본주의의 전개」(The Evolution of Moern Capitalism)에서는 독점, 소득분배의 불평등 및 불황을 초래한 산업질서를 비판하였다. 「제국주의론」(Imperialism)에서…
3. 영국 경제사가 토니의 경제에 대한 관점
획을 잘 나타내 주었다. 마르크스주우의자와는 반대로 페비안주의자들은 국가를 계급투쟁의 도구로서 파괴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통제의 수단으로서 사회복지의 증진을 위해 장악하고 이용해야 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목적달성을 위해 그들은 사회주의적 정강을 가지는 노동당의 결성의 주장했으며, 이들을 포함한 집단은 1906년 정당을 결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또한 목표달성을 위해 지방정부도 이용하려고 했는데, 지방정부는 1880년대 후기부터 1890년대 초기까지의 각종 입법으로 크게 강화되어왔다. 페비안주의자들의 전술은 민주적, 의회적 정부의 틀 내에서 정치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일반 대중들에게 자기들 견해의 정당성을 확신시키고, 일련의 조사연구 보고서와 대중 팜플렛을 통해 자기들의 입장을 선전함으로써 개혁을 실시하려고 했다. 페비안주의자 그룹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들의 활동 1914년 이전 영국에서 의회를 통한 복지입법추진에 기여했으며, 노동당을 조직하는데도 협력했다. 사회개혁을 위해 지방정부를 이용하려는 시도나 대규모 산업(석탄, 철강, 전력 금융 및 철도)의 국유화 시도는 실패했지만, 그들의 사상과 전술은 노동당 속에 연연히 이어져 내려와 2차세계대전 후 페비안협회의 활동과 영향력이 다시 크게 활발해졌을 때에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현대 영국의 많은 복지입법과 수송, 석탄 및 기타 기간산업의 사회화는 페비안주의자들의 영향에 그 공로를 돌릴 수 있다.
3. 영국 경제사가 토니의 경제에 대한 관점
16세기 영국 경제사가인 토니(Richard H. Tawney, 1880-1963)는 위와는 다른 형태의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그의 연구분야는 16세기의 영국경제사였다. 16세기는 20세기의 정치, 경제문제를 둘러싼 소동과는 상당히 판이한 시기였지만, 토니는 이 양시대 모두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대작 「16세기의 농업문제」(The Agrarian Problem in the 16th Century, 1972)는 낡은 농업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