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역사적 관념주의의 주관화와 신학 발전
1. 종교에 대한 실증주의에 대한 관념주의자의 비판
랑케가 시도했던 과거 사건의 사실 그대로의 추구는 좀 지나친 단순화였던 비판을 받았다. 역사는 일어난 사실들을 보이는 대로 기록한 연대기만은 아니다.
로빈슨의 지적대로 "19세기에는 역사적 사실을 단지 이름, 장소, 날자, 일어난일, 순서, 원인, 결과 등으로 보았다.
역사가 사람을 자연과 구분시키는 인간적이요 창조적이며 유일하고 의미있는 것이라고 본다면 그런 것들만 가지고는 역사가 될 수 없는 것들이다"(James Robinson,A New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 SCM,1959,P.28).
그리하여 관념주의자들은 실증주의자들이 인식하지 못했던 과거 사건의 내면적인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빌헬름 딜타이, 베네디토 크로체, 콜링우드 같은 이들이 역사를 내면에서부터 봄으로써 새로운 역사의 연 구 방법을 시도하게 된다.
2. 딜타이와 크로체의 비판
딜타이는 인문과학 (geisteswissenschaften)을 자연과학 (naturwis-senschaf ten)과 구분시켰다. 전자는 후자의 방법 속에 포함시킬 수 없는 것인데도 실증주의자들은 "자연과학의 이상과 방법에 적용시키기 위해서 역사적 실제를 망쳐 놓았다."고 본 것이다. (Nash,P.31). 다른 말로 하면 19세기 역사 비평학은 인문과학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는 내면 또는 의식의 차원이 전혀 결핍되어 있다는 것이다. 딜타이는 인간의 정신이 언어, 미술, 음악, 법, 종교 등을 볼 수 있는 현상을…
그러므로 객관적이고 죽은 역사적 자료들은 역사가들의 현재 경험 속에서 살아나야만 하는 것이다.
3. 콜링우드의 비판
4. 신학에서의 올바른 접근
이 철학에 의하면 진리는 주관이다. 하나님이고 영원한 진리이고 간에 내면성에
가에게 자신이 연구하는 역사의 행위들은 구경할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행위이기 때문에 그에게 객관적으로 알려 지는 것이다."(Ibid,P.218). 그러므로 행위의 과정은 내면적 과정의 외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게 되고 나아가서는 이러한 과거의 사건들은 역사가들을 통해서 경험되지 않으면 역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즉 역사가들이 주관적으로 과거를 다시 생각해서 재구성하는 것이다.
콜링우드의 이러한 입장은 성경 역사 해석을 매우 주관적으로 하도록 만들었다. "교리의 외적인 면만으로는 죽이는 일을 하지만 내면적 역사, 즉 사고의 발 전 속에 들어가는 것은 살리는 일을 한다."(Ibid,P.78). 19세기 역사적 예수의 개념을 부정하면 그는 그런 식의 순수하게 객관적인 역사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를 신학의 개념이 아닌 역사 사실로 보는 것은 일을 단순하게 할지는 모르나 우리에게 바른 이해도 주지 않고 그의 의식에 참여하는 것도 막아버릴 뿐이다. 예수의 생각을 연구한다는 것이 좀 주제넘게 들릴지 몰라도 다른 방법은 전혀 가치가 없다고 본다 (Ibid).
4. 신학에서의 올바른 접근
이미 앞에서 다룬 대로 실증주의자들의 예수는 실증주의자들의 가정을 그대로 투사시킨 것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의 초자연적인 성격이 제거된 채 보통 사람으로서의 예수는 전체 인류의 구주로 전통적인 입장에서 보면 별 가치 없는 존재로 나타났다. 그래서 관념주의자들은 보통 사람 예수의 내면을 들여다 봄으로써 어떤 가치있는 것을 좀 건져보려고 시도하였다. 그들이 찾아낸 것은 예수의 마음이 하나님과 동료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제 그리스도의 이해는 순전히 인간의 차원에서 훨씬 풍부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 실존주의자들은 예수뿐만 아니라 주위에 관련된 사람들의 삶의 자리를 연구하으로써 더 많은 의미를 더하게 되었다. 실존 철학은 내면화 또는 주관화를 더욱 가속했다.
이 철학에 의하면 진리는 주관이다. 하나님이고 영원한 진리이고 간에 내면성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