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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의 역사 개요
1. 독립이전
에콰도르의 원주민으로는 칩차 (Chibcha), 치무에 (Dhimue), 융가 (Yunga), 퀴토 (Quito), 푸라아 (Puraha), 팔따 (Palta) 部族 등이 있었는 데 이중 까라 (Cara)족이 통치하던 퀴토왕국이 가장 번창 하였다. 15세기 말경 퀴토왕국은 우아야나 까빡 (Huayana Capac)에 의해 잉카제국의 지배하에 들어 갔다가 1532년 스페인에 의하여 정복되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에쿠아도르의 중앙 안데스 분지에 대규모 농장을 만들어 인디언 노예을 부렸다.
서부해안지역은 당시 인디안이 별로 살지 않았고 또 주거지역으로는 부적합하였기 때문에 정복자들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하였다. 또한 동부지역도 완강(頑强)한 인디안과 적응하기 어려운 열대기후로 말미암아 스페인 정복자들이 정착하기 어려웠으며, 단지 포교를 목적으로 소수의 선교사들이 거주하였을 뿐이다. 이 당시 갈라파고스 제도는 해적의 소굴에 지나지 않았으나, 19세기에 다윈이 바로 이 섬에서 진화론을 연구하여 펴낸 ??종의 기원』이란 책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809년 퀴토 시민들은 처음으로 스페인法에 반기를 들기 시작하였고, 1822년 콜롬비아의 시몬 볼리바르, 안토니오 호세수크레가 에콰도르 반란자들의 도움을 맏아 피친차 (Pichincha) 대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에쿠아도르는 마침내 스페인으로 독립하였다.
2. 독립후 1차대전까지
독립이후 8년동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와 함께 그란 콜롬비아 연방에 속해 있었으나 1830년 연방에서 탈퇴를 함으로써 에콰도르 공화국(The Republic of Equador)이 되었다. 이후 1830년부터 30여년간 퀴토시를 중심으로한 귀족보수세력은 경제 및 사회…
3. 1차대전이후 2차대전까지
4. 2차대전이후
되었다. 그러나 에쿠아도르는 당시의 리오조약은 강압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무효라고 선언, 아마존 지역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이 노력은 오히려 국내의 긴급한 문제들을 소홀히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을 뿐이다.
4. 2차대전이후
2차대전이후 헌정이 실시되었고, 선거에 의하여 자유세력의 갈로 플라사 (Galo Plaza)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1948년) 그 후 유명한 벨라스코 (Jose Maria Velasco Ibarra)가 집권, 1970년까지 다섯차례나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정당활동을 금지하고 전통적인 경제, 사회구조를 개혁하는 데 주력하였다. 1961년 11월에 노동단체 좌익정당 및 군부가 합세, 벨라스코를 실각시키고 강제추방하였다. 그 후 아로세메나 (Julio Arosemena Monroy)가 집권하였으나, 1963년 7월 쿠데타로 해군소장 카스트로 (Roman Castro Jijon)를 首班으로 한 군사위원회가 결성되었으며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이 군사위원회는 1966년 3월에 해산되고 같은해 10월 아로세메나 (Otto Arrosemena Gomez)가 임시대통령이 되었다. 1968년 6월에 前대통령 벨라스코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어 헌법의 기능을 정지시킴과 동시에 의회도 해산, 독재정치를 강행하였다.
1972년 쿠데타에 의해 당시 육군 참모총장이던 로드리구에즈 (Guillermo Rodriguez Lara) 가 집권하였으나, 1976년 1월에 다시 三軍의 참모총장이 정권을 장악하여 3인 군사혁명위원회를 설립하고 다소 안정을 유지하면서 1978년 국민투표를 실시, 신헌법을 제정하고 1979년 8월 정식으로 인민연합당 (CPF)의 Jaime Roldos Aquilera 을 대통령으로하는 민간정부가 출범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