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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와 신라의 주요 도시(도성)검토
1. 백제시대
백제가 하남 위례성에 처음 도읍을 정한 후 여러 곳으로 이도하였으나 도성으로써 논할 수 있는 것은 웅진성과 사비성이라 할 수 있다.
1) 웅진성
475년 문주왕원년에 웅진(공주)에 이도하였다. 이곳은 고구려의 남진세력에 밀려서 방어에 편리한 곳을 찾은 것으로 금강으로 3면이 차단된 3각지, 험준한 산형을 이용하여 산성을 쌓았다. 이 산성은 매우 협소하여 가장 넓은곳의 폭이 약 4정, 길이 8정 불과하고, 성벽은 석축을 하였으며, 남쪽에 진남문, 북쪽에 홍북루가 있으나 요새로서는 견고하지만 좁은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 도성의 동북방에 공산성이라는 산성이 있고 등고선을 따라 석축 성벽을 불규칙으로 쌓았으며 남과 북에 성문이 있었다. 왕궁은 별도로 현재의 국립 공주 박물관 부근에 있었다는 추정이 있지만 판명되지는 않고 있다.
여기서도 도성과 산성이 있었으며 고구려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유적이 남아 있지 않고 63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의 도읍이었기 때문에 도시계획적인 특색은 알 길이 없다.
2) 사비성
538년 성왕 16년에 천도한 사비성(부여)은 백제가 망할 때까지 120여년간의 도읍지로 매우 발전된 도성이었다.
금상(백마강)의 구곡부(灣曲部)를 이용하여 그 내측의 분지를 둘러싼 산(표고 약 120 m)에 토건성벽을 구축하여 동서 1리 3정 , 남복 1리 10정 정도의 고지대를 도성으로 하였고 전체의 모양이 반달 같다고 하여 반월성이라고도 일컫는다. 도성의 서북단 백마강 위 낙화암이라는 절벽으로 이룩된 부소산에 산성을 만들어 도성속에 산성이 연결되도록 하였다.
지금까지 고구려나 백제의 웅진성까지는 도성과 산성이 양립된 형식이었는 데 비해 사비성은 산성과 도성을 포함하여 시가지포위식으로 되어 있어 중국의 축성법을 도입한 듯 보인다.
고구려 말기의 장…
2. 신라시대
1) 경주도시의 발생
2) 경주의 전성기
왕(憲康王)9년에 왕과 신하가 망루에 올라가 바라보니 기와집이 즐비하고 숯으로 밥을 짓고 가무가 끊이지 않았다고 하였다. 인구는 178,936호라 하였으니 6인가족으로 셈하면 약 100만이 되고 행정구역은 크게 6부로 구분되어서 방(坊)이 1, 360개, 리가 55개가 있어 세계 굴지의 대도시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숯으로 밥을 지어 도시공해를 방지하는 백색도시였다고 생각되지만 인구 100만이었음에도 상수도시설의 유적이 없음에 비추어 보면 주위에 내가 많이 흐르고 있어 자연수를 음료수로 상용하였다 하더라도 수질오염을 생각할 때 생활용수로문제로 봐서 과연 100만이란 집단이 어떻게 생활하였는지는 의문이 있다.
이상으로 삼국시대의 도성에 관하여 특색을 알아보았다. 그 중에서 공통된 특색은 삼국 모두 반월형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구려의 평양성도 반월형이고 백제의 사비성도 부소산을 끼고 양쪽머리가 백마강에 닿도록 반월형으로 꾸몄으며, 신라의 월성도 반월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반월형들은 만월은 가득 차서 곧 기울지만 반월은 만월을 향하는 도중에 있는 힘찬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는 풍수적 신앙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