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르트의 역사관과 신학
1. 바르트의 종교에 대한 역사관
바르트는 자신의 초기 입장이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의 지식 즉 계시를 심각하게 다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불트만이나 틸리히와는 다르게 그의 후기 작품들은 계시를 참된 역사적 사건이요 객관적 지식으로 받아들여 보려는 시도를 역력히 보여 주고 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의 입장은 다른 어느 동시대의 정통 인물들에 비해서 대단히 보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장은 그가 노력한 대로 신앙의 객관적인 지식을 사실상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역사관은 실존철학적인 주관성을 탈피하지 못한 채 어떤 사실이나 객관적인 지식 위에 세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역사관의 변화는 그가 초자연적인 사건들 특별히 부활의 사건들을 다룰 때 나타난다.
자신의 초기 작품에서 바르트는 "신구약에 기록된 성경의 역사는 절대로 실제 역사가 아니다"고 선포했다.(The Word of God The Word of Man& P.72). 부활은 그에게 처음이나 나중이나 보통 의미에서의 역사적인 사건은 될 수 없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재림은 -둘 다 같은 것이지만-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역사가들은 이점에서 안심해도 좋다. 물론 그들이 자신의 확신을 이런 것으로 파괴하고 싶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것이 역사 안에서 실제 일어난 것이라도 여기에서 우리의 관심거리는 정말로 무엇이 일어났느냐 하는 것은 아니다. (Ibid., P.90). 그러므로 부활은 단지 "예수의 실제로 살았던 역사적 생애와 그것의 하나님 안에서의 시작 사이의 비역사적 관련"을 위한 상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The Epistle to the Romans,P. 195).
그런데 바르트는 자신의 신학에서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 후기 작품에서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2. 바르트의 사상 분석
3. 볼트만의 역사관과의 비교
그 공동체(혹은 사도들의 좁 고 넓은 집단으로서의 공동체의 본래 형태)의 형성과 발전과 불가 분리의 관계 에 있기 때문이다"(CD,IV,1,pp. 334-35). 그렇다면 부활의 실제 의미는"신앙의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지 잘 증명된 역사(Historie)적 보고를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역사(Geschichte)가 실제로 일어났다는 증거-현대의 역사 (Historie) 방법의 용어대로-가 없기 때문이다."(Ibid).
두 가지의 역사의 용어를 번갈아 써가면서 바르트는 자유주의의 상대주의를 피해 보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3. 볼트만의 역사관과의 비교
그러나 그의 역사의 이해는 근본적으로 불트만과 같다. 불트만은 바르트와는 다르게 Historie 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성경의 기적들을 신화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성경의 초자연적인 내용들을 역사족 사건의 범주에서 제외서켜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는 불투만에 의해서 제외되었던 전통적인 교리들을 역사의 범주속에 포함시키기 위해 역사의 의미를 확대시켰다. 그래서 바르트는 일반적인 의미의 역사외에 특수한 역사를 덧붙이고 그것이 Geschichte라는 단어의 사용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제 하나님의 계시는 "특별 역사"로 구분이 되게 된다. 그것은 "내용이 창조주 하나님이기 때문에 보통 역사 이상의 것"이라는 주장이다(CD,III,p.78). 이러 한 특별 역사를 바르트는 전설(saga)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전설이라는 번역이 좀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므로 원어를 그대로 써 보자. 바르트는 신화(nyth)와는 달리 saga는 역사가 될 수 있다고 주장 한다. 그는 그는 신화란 단어가 못 마땅하다고 생각해서 이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다.
바르트에 의하면 sage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 내에서 단 한번 제정된 역사의 역사 이전적인 실체의 전적인 실체의 직관적이고 시적인 그림의 의미에 쓰인다.
전설(legend)이나 일화(anecdote)는 변질된 형